모두가 암담한 벽 앞에 서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요새 취업난이 심하다, 서울대를 나와도 취직이 안되니 쓸모가 없다, 같은 부류의 얘기들은 어쩌면 현대 우리나라의 괴담과도 같다. 하지만 일단 고등학생 때까지는 대학 입시라는 더 큰 관문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명백한 남일이었다. 당장 오늘이 막막한 주제에 10년 뒤의 일을 고려하는 것처럼.
취업은 입학과 동시에 바로 내 일이 됐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와 만나기만 하면 취직 얘기를 했다. 1학년 때부터 학교 어플의 취업게시판을 들락날락했다. 어떤 스펙이 필요한지, 정량 스펙은 무엇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도 혼자 나서서 정보를 캤다. 토익과 컴활, 공기업에 갈 거라면 한국사와 대외활동을 준비해야 했다. 대외활동이 쌓이면 인턴을 준비하고 인턴을 몇 개 하고 나면 취직을 준비할 수 있는........... 끝없는 쳇바퀴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저렇게 아등바등했지만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해야하냐는 생각이 주로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3학년을 준비하고 있는 이번 겨울, 내 친구의 대부분은 4학년을 준비하고 있다. 고등학교 3년은 지독하게도 길었던 것 같은데 대학교 3년은 소름 끼치게 빠르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어른들의 말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모두 입 모아 말했다.
우리는 교복을 입었을 때 선생님이나 입시, 교우관계가 대화의 주제였다. 3년 사이에 우리는 토익이나 컴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다. 대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취직이고 이야기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암담함이 드리워진 기분이라 답답하다.
나는 생각이 맑았다. 일단 광고를 좋아해서 광고학과에 왔고 직업을 갖는다면 광고 쪽에 종사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꿈이 끊기지를 않아서 고등학생 때 꿈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가고 싶은 학과가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데 대학을 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꿈이 없으면 대학이 재미가 없지 않나 싶었다. 난 전공이 너무 좋았고 전공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우스운 건 지금은 정작 꿈을 잃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한 가지에 올인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않다. 이 곳은 광고에 미친 사람들이 많고, 나보다도 분명 더 많이 이 일을 사랑하고 이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안에서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를 준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고등학생 때 생기부-생활기록부-를 채워나가는 기분으로 스펙을 하나둘씩 채워나가고 싶었는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무서웠다. 과자 틀에 반죽을 꽉꽉 채우는 것처럼 내 삶을 채우고 싶었는데. 막상 구워졌을 때 속이 다 부서지거나 텅 비어버린 허울만 좋은 과자가 될까 봐 무섭다.
부모님은 줄곧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디에 가더라도 즐거울 거라고, 항상 꿈을 찾으라고 이야기했다. 난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의욕을 낼 수 있을 만큼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어서 열심히 그 말을 쫓고 있다. 쫓으면서 몇 번의 고배를 마셨는지 모른다. 떨어지고, 실패하고, 망가지고. 꿈은 조각난 지 오래고 파편 조각만을 간신히 들고 달리고 있다. 조각들이 많아지면 뭐라도 되겠지, 이런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멈춰있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달릴 뿐. 그 끝이 어디라도 달리지 않았을 때와는 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