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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r 03. 2021

나이 먹으면 안 되나요

우리는 지금도 나이를 먹고 있는데




티비에 나오는 햄버거 런치세트 광고를 보고 아빠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점심에는 세일을 해서 그렇구나."


앞의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 도출한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왜 갑자기, 하고 물었다.


"직원들이 점심때마다 자주 시켜먹더라고."


한국말은 참 대단하다. 말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의미가 다르다. '시켜먹더라고' 하는 말을 통해서 본인은 그 행동에서 제외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으니. 말하는 걸 들으니 단 한 번도 같이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같이 먹자고 해보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장난을 쳤다.


"따로 먹어야지. 걔네 불편해서 어떻게 같이 먹어."


"뭔가 슬프다. 윗사람이라고 같이 안 먹어주는 거야? 위로 가면 고독해지네."


"마냥 좋은 건 아니지."







아빠는 지금 발령 난 사무실의 수장인데-아빠는 수장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아무래도 나이가 많다 보니 직원들과 어울리는 게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머릿속으로 혼자 일하고 휴식하고 있을 아빠와 따로 생활하는 젊은 직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빠는 본인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거겠지만 뭔가 나에게는 나이가 들수록 '대세'에서 소외가 된다고 느껴졌다. 어울림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본디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좋아하고 친구가 되는 데에는 나이가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지만 어쩌면 이것도 내가 '주류 세대'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빠의 상황은 물론 직장상사라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 존재한다. 하지만 얘기하는 게 즐겁고 혼자 있으면 외로운, 한 명의 사람일 뿐인데..........






문득 고등학생 때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나는 여고를 나왔는데 내가 입학한 해에 이례적으로 남자 선생님들이 많았다. 10개의 반 중 5개의 반이 남자 선생님이 담임을 맡았다. 나의 담임선생님도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이런 건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중 네 명의 선생님이 서로 또래였다. 모두 30대 초반이었던 것이다. 나머지 한 명은 40대 초중반으로, 나이차가 적게 나는 건 아니었다. 네 명의 선생님은 방학 때 같이 여행을 떠날 정도로 친해졌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맡은 학년도 같고, 가족보다 얼굴을 더 많이 맞대고 지내야 하는 환경에 있으니. 선생님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건 그러려니 싶었지만 다른 선생님 한 명은 소외되어있었다.


나이가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혼자 동떨어진 선생님. 그게 어쩐지 불편했다. 어울릴 수 없어서 아예 선을 긋고 있었다.



나이가 벽이 되어버린 걸까? 아마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기반에는 나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나는 조금 두려워졌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어가고 있다. 현재는 영원하지 않다. 누군가 나를 나이로 인해 부담스러워하고 배제시킨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있을까. 정말 모든 편견의 장막을 걷어낸다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나는 나의 시간이 걸림돌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오고 쌓아온 시간들이, 나의 발목을 붙잡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수긍해야만 할까? 회사에서 부하직원들에게 부담될까 봐 눈치를 보고, 젊은 사람들의 어울림에 끼어들지 못하고.  나이가 드니 이런 거라며 받아들이고, 찾아오는 소외감들을 나이 먹은 탓이라고 다독이고 넘어가고............ 나이는 아무리 절로 먹는 거라지만 삶이 이런 식으로밖에 바뀔 수 없다면 나이를 먹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실례되는 일이다. 특히 그런 삶을 살고 있을 세대들에게.



나이는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흔적을 담는 것. 딱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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