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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r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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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렸다. 비가 많이 와서 굳이 큰 우산을 들고 나온 참이었다. 기온이 떨어져서 날은 찬데 버스는 오지 않았다. 건물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에도 애매해서 반쯤은 비를 맞고 반은 지붕 밑에 서 있었다. 시간을 때울까 싶어 자주 보는 SNS에 들어갔다. 애들은 뭘 하고 지내나, 하며 둥둥 떠 있는 동그라미들을 하나씩 눌러 넘겼다. 그러던 중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의 최초의 죽음이었다.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할 만큼 친밀하지도 않았고 나눈 대화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상실을 인지하고서 어째서인지 눈물이 흘렀다. 나와 같은 나이의 죽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울었다. 슬픈 일이라는 걸 깨닫지도 못하고 울었다. 보지 못한 게 10년이 넘었는데 그저 미안해서 울었다. 내리는 비보다도 많은 눈물이었다. 마스크가 흠뻑 젖어서 얼굴이 축축해지고 머리가 울릴 정도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눈앞을 지나갔지만 힐끔 쳐다보고 말았다. 위로가 필요했다면 외로웠을 것 같고, 외면이 필요했다면 다행이었다. 내가 필요한 게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차 안에 올라타서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종교도 없고 무언가를 믿어본 적도 없지만 행복하기를 바랐다. 찾아갈 수도 없을 것 같은 나에게는 그게 최선의 기도였다.









글을 쓰는 것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문자로 표현해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인데 이번만큼은 아무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답할 수 없는 타인의 이야기로 무언가를 남기고 싶지 않다. 내가 느꼈던 것을 남기는 것이 틀린 일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없다. 나에게는 이야기할 권리가 없다. 말 한마디가 혹여나 무례가 될까 싶어 글을 아끼고 있다.


그저 나는, 아픈 이들이 없길 바란다. 다가오는 불행들에 삼켜져 자신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무것도 모르는 삶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것들을 겪게 된다면 하나둘씩 답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난 떠나간 이들의 시간까지 받아들여서 살아가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들을 실천으로 옮기고 싶다. 여태껏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예측할 수 없는 삶에서 위안이 딱 하나 있다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만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도 많다는 것이다. 선택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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