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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r 21. 2021

지금 잘 크고 있는 거 맞지?

나의 마리모 이야기



생일에는 들뜬다. 특히 내 생일은 새해가 되고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이기 때문에 새해의 들뜸이 생일의 들뜸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에게 축하를 받았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선물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바로 마리모였다. 잔인하게도 생명을 키우는 데에는 유행이 있다. 마리모의 유행은 이미 지난 것으로 알았는데 뜻밖에도 마리모를 선물로 받았다. 마리모를 준 친구는 대학교 동기로, 날 반년만에 보자마자 언니가 준 쿠키 잘 먹었어, 하길래 그 쿠키가 뭔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준 생일선물이었다는 게 십 분쯤 후에야 떠올라서 준 사람은 나인데 괜히 감동을 받았다.






어쨌든, 택배로 받아 든 마리모는 조그마하고 동글동글해서 금방이라도 물에 휩쓸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손가락 하나 정도 되는 유리병에 푸른색 자갈을 깔아주고, 조개껍데기와 해초로 장식을 해줬다. 너무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물 온도를 요구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지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는 또 한참 동안 고민을 했다. 이렇게 처음 오는 부류들은 주로 정체성과 존재에서 이름을 따오는 편이라 마리모, 라는 이름을 기반으로 새 이름을 만들려 했다. ㅁ이 돌아가면 일단 정체성이 반은 살 것 같은데. 몽몽이나 망몽이는 강아지 같았고 남은 후보는 망망이였다. 이름은 부를수록 정이 든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 집 탁자 한 구석을 차지한 마리모에게 망망아, 하고 부르니 망망이가 금방이라도 대답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름 짓는 과정과 선물 해준 친구에게 보낸 인증샷
















사실 마리모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나는 마리모가 식물인지도 몰랐다. 누군가 마리모를 키우다 죽었다고 하길래 물고기 같은 '어떤 생물'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택배 안의 망망이가 움직이지도 않아서 이상했고 물에 넣었는데도 떠오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모습이 이상했다. 언니한테 왜 망망이가 안 움직이지? 하고 물었더니 식물이 어떻게 움직이냐며 바보 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식물인 줄 알았다. 움직이지를 않는구나. 슬픈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내 목소리는 들을 수 있겠지, 싶어 아침마다 인사를 해주고 틈이 나면 말을 걸었다. 안녕, 망망아? 좋은 아침이야. 오늘 되게 따뜻하다. 그치? 자기 전에 인사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잘 자고 내일 봐.






애정을 받은 덕분인지 이 집에 온 지 두 달 반, 몸이 뾰족뾰족해질 정도로 자랐다. 성게처럼 변해버린 모습을 보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가끔 파란 자갈이 몸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모르고 굴러다니는 것 같아 놀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그걸 떼주겠다고 망망이를 눌렀다가 아프게 될까 봐 아직까지 내버려 뒀다.





지금 모습과 첫 날의 모습





누가 보면 나는 스물세 살이나 먹고도 식물에게 말을 거는 바보처럼 보일 거고, 식물이 살아있다고 믿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애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자그마한 것을 사랑해주고 싶다. 애정이 드는 걸 모른 척할 수가  없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말을 걸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단지 물을 갈아주는 것뿐이라서, 가끔 말을 걸어주는 것뿐이라서 무력함을 느낀다. 내 사랑이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너도 이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내 옆에서 동그랗게 있어줄 수 있다면. 그것밖에 바라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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