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ㅋ'자도 모르던 나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사건은 바로 ‘kinds(한국 언론 재단 구축
종합 뉴스 DB)의 발견이었다. 당시 (1992년) 자료조사는 도서관을 쫓아가거나 방송국 자료실에서 들기도 무거운 신문철을 뒤지는 게 기본이었다. 그렇게 보면서 일일이 복사기로 들고 가 복사하거나 메모하거나.. 그런데 옆 프로그램 PD분이 컴퓨터에 ‘kinds’란 명령어를 입력하고 내가 찾고 싶어 하는 검색어를 통해 신문기사들을 한자리에서 주르륵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거다. 그야말로 ‘유레카’가 아닐 수 없었다.
1편에서도 밝혔지만 당시 컴퓨터엔 윈도우도 인터넷도 없었다. 그냥 파란 화면에 커서만 깜빡이는 게 다였다. 그 화면에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하고 느린 속도를 기다리고 도 파란 화면에 가독성과 상관없이 펼쳐지는 흰 글씨를 보는 게 눈도 아팠다. 하지만 어쨌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뭐라도 된 듯 으쓱해지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길 거부하진 않았었던 것 같다. 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라고 할까? 방송 직전 원고 수정이 나오면 일일이 원고를 수정액으로 지우고 손글씨로 채워 넣거나 다른 종이에 쓴 조각 원고를 찢어부치는 수고를 해야 했다는.. 지금 그런 장면이 떠오르거나 상상이 되는 사람은 요즘 말로 '옛날 사람' 일지도..
어쨌든 그때 이미 난 컴퓨터가 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될 거란 걸 예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발을 들여놓은 컴퓨터의 매력에 한껏 빠지게 된 건 ‘천리안’이니 ‘ 유니텔’ 이니 하던 컴퓨터 통신 덕이 컸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채팅을 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사실 겁이 많아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기보다는 영화 퀴즈를 내고 맞추는 식의 단체 채팅방에
빠지는 게 더 많았지만...
그 시절 컴퓨터는 한자리에 고정돼서 움직이기 힘든 물건이었다.
그러다 컴퓨터 비슷한 물건을 들고 다니며 글을 쓰는 사람을 보게 됐다. ‘앗! 저건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 그 물건은 바로 ‘워드프로세서’라는 물건이었다. 모니터가 아니라 작은 액정 창에 쓰는 글이 타이핑돼서 보이고 출력을 하려면 한때 거의 모든 팩스에 사용되던 두루마리처럼 말린
‘감열지’라는 종이를 넣어야 하는 그런 물건이었다. 세상에 이런 물건이 하며 침을 흘렸을까?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불편해 보이는 점이 많았기에 저걸 쓰느니 그냥 손으로 쓰는 게 훨씬 빠르겠단 생각을 속으로 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흑백 모니터의 노트북 등장! 이게 물건이었다. 들고 다니며 글을 쓸 수 있었고 랜선만 있으면 컴퓨터 통신도 됐고, 프린터 선만 꽂으면 프린트도 됐다. 와우!
단지 문제라면 가격이 20여 년 전 가격으로 150만 원 정도였다는 것. 하지만 난 과감히 투자했고 겨우 1,2년 잘~ 썼다. 이 고가의 물건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게 된 건 윈도우의 등장이었다.
사실 그전에 잡지사에서 잠시 알바로 일할 때 애플컴퓨터를 접했었는데 이상하게도 화면에 휴지통이니 하는 것들이 있어서 쓰기가 생소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비슷하면서도 훨씬 편해진 컴퓨터가 등장한 것이다. 마우스라는 걸로 따닥 치면 켜지는 새로운 화면들 그 매력에 어떻게 안 빠질 수 있었겠나? 더구나 그러면서 온갖 종류의 화려한 게임의 세계가 펼쳐졌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즈음 방송작가들의 작업에 컴퓨터와 한글 프로그램이 필수조건이 되어갔고 다양한 브랜드의 컴퓨터와 노트북들이 내손을 거쳐가게 됐다. 그러다 다시 한번 내가 컴퓨터에 입을 딱 벌리게 된 건. 바로 영상편집 기능과 동영상 플레이 기능이었다. 방송원고는 기본적으로 영상을 바탕으로 써지는 영상을 위해 존재하는 글이다. 그러다 보니 그전에는 편집된 영상을 보기 위해 편집기가 있는 방송국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거기서 조금 변화된 것이 편집된 영상을 집에서 볼 수 있도록 비디오테이프로 카피해 가져가는 것이었다. 물론 얼마 안돼 영상을 파일로 보내주는 게 가능해졌지만 다운로드 시간과 에러 확률 때문에 비디오테이프를 한동안 선호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도 cd, dvd. usb를 차례로 배워야 했고 지금에 와선 '비디오 테이프가 뭐예요?' 하는 세상이 됐다. 이제는 메일로 영상을 받아서 한쪽엔 영상을 플레이시켜놓고 한쪽엔 한글 프로그램을 띄우고 실시간으로 보면서 원고를 쓰는 나를 보며 난 한 번씩 실소를 한다.
'참 세상 따라잡아 가며 사는 게 만만치 않는구나... '
지난 25년간 난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컴퓨터와 함께 살아왔고, 하루도 컴퓨터 없인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 와중에 ‘삐삐’에서 벽돌폰 폴더폰, 스마트 폰까지 등장하면서 난 그야말로 끊임없이 새로운 걸 배워야 했고, 지금도 눈 팽팽 돌아가게 변하는 세상에 발맞춰 나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돌아보면 난 늘 새롭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아니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워 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나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내 나이 낼모레 쉰. 그런데 아직도 내 앞엔 하루하루 배워야 할 것들이 쌓여만 간다. 물론 안 배운다고 죽는 것도 누가 날 손가락질하지도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기 위해 난 오늘도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맘이 바빠진다.
잠들지 못하는 세상이 그렇게 날 깨어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