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 수 있는 용기
얼마 전 잠시 하던 일에서 손을 놓고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기획부터 시작해 2년 넘게 해온 일을 한순간에 내려놓는 게 쉽진 않았다. 이 일이 혹시 내게 있어 마지막은 아닐까? 혹시 이게 내 은퇴작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흔히들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제고 일하고 싶을 때 하고 그만두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신분.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말 그대로 그런 자유를 누리려면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능력자가 아니면 사실 실현이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제가 친한 선배는 그런 얘길 했었다. 직장인이 된 친구들은 시간이 흐르니 과장도 되고 부장도 되어 있던데 우리 같은 프리랜서 방송작가란 직업은 어떻게 앞도 뒤도 없는 그런 일인 거 같다고. 어떻게 보면 늘 제자리인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떤 기준에선 세상에 뒤처지는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처음 이일을 시작할 때에 비하면 지금 현역으로 일하는 작가들의 연령대가 꽤나 높아지긴 했다. 내가 막 이일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 해도 방송계에서 tv구성작가 쪽은 40대 넘어선 선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 내가 볼 수 있는 주변에선 적어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독보적인 왕선임 자리에 앉지는 못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 내 위로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선배들이 이 분야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일을 시작했을 때 방송사는 공중파 3사가 고작이었고 그나마도
스브스 티브이가 막 생긴 시점이었다. 그러니 방송작가란 직업 자체도 희귀했고 몇 명 되지
않았었던 거 같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케이블 tv들이 문을 열면서 방송인력이 어마 무시하게 부족해졌고, 그에 발맞춰 각종 아카데미를 통해 인력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케이블 tv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imf를 맞으면서 방송제작비마저도
그 영향을 받게 되면서 줄어든 일자리와 보수에 업계를 떠나는 이들도 많아졌다. 더구나 방송작가(tv 구성작가 분야)라는 게 허울만 좋을 뿐 실상은 3d업종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이 분야를
지망하던 이들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배운 게 도둑질’( 개인적으로 정말 안 좋아하는 말이지만...)이라고 어느새 10년 넘게 이일을 해나가고 있던 난 계속 이일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1년 2년이 흘러 경력 25년이라는 이력서가 내 손에 쥐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종편채널들이 생기면서 잘하면 몇 년 더 현역에서 뛸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까지 생겨버렸다.
다시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로 돌아가면 이런 와중에 프리랜서라는 장점을 한껏 살려
난 잠시 하던 일을 놓고 쉬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 참 기분이 이상하다. 그동안 일하면서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수없이 많이 일을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곤 했었는데
느닷없이 이번엔 뭔가 뒤통수가 뜨끈해지면서 혹시 이게 내 은퇴로 이어지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늘 걱정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해온 내 노후와 내 중년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뭘 하고 살까? 뭘 하고 누구와 놀까? 나에게 남은 삶은 어떻게 채워질까?
언제나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고민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려고 했던 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였다.
그 접점에서 내가 찾은 것이 카메라였다.
난 어쨌든 20년 넘게 글이란 걸 써 온 사람이란 것과 글 말고 뭔가를 표현하는 도구로 늘 부러워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재능은 그림이었으니 그림을 대신할 도구를 찾으면 어떨까 싶었다.
카메라와 컴퓨터. 나에게 익숙한 영역이고 언제나 내 가까이 있었던 것들.
이 두 개만 있으면 어쩌면 생각보다 재밌게 놀 수 있지 않을까?
가져야겠다. 시작해 봐야겠다 결심이 섰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 바로 남편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