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조금 덜 불행해지기로
했다 3

나는 왜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졌나?

by 딜레탕트 줌마

내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나?

아니 그전에 난 얼마나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드러내 쓸 수 있을까?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가 없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화제성과 시청률을 모두 잡으며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난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마니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장르와 채널 상관없이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편성표를 외우고, 그 시간을 기다려 시청했다.

뿐만 아니었다. 관련 동영상이 뜨면 그걸 찾아보고 재방송까지 또 보곤 했다.

한동안 성공 공식처럼 여겨졌던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기록한 높은 시청률을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특별한 이유를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공통의 조건은 ‘재밌으니까’ 봤을 것이다.

나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정 출연자의 팬덤에 들어가거나 하다못해 전화투표에 조차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저 난 오디션 프로그램이 도저히 안 보고는 못 배길 만큼 좋았다.

남편은 그런 내게 왜 그렇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냐며 의아해했고,

생전 듣지 않던 트로트 음악 오디션이 재밌다고 하는 나를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밌었을까?


그러다 문득 내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료된 이유가 깨달음처럼 내 맘에 콱 박히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 너무나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눈물 어린 가정사를 털어놓는 장면도 아니었다

그건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약속된 미래가 없음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받치는 이들의 간절함이었다.

긴장감을 이겨내고 무대 위에 서고,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비평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패배의 쓰라림에 눈물 흘리면서도 다시 계속할 용기를 이어가는 참가자들.

그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고, 그 뜨거워진 가슴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 난 무언가에 저토록 미쳐본 적 있었나? 저토록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저렇게 모든 걸 던질 정도로 원했던 게 있었나? ’

난 내가 가져보지 못한 그 ‘뜨거움’에 매료돼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또 찾아봤던

거였다. 그들을 보며 그들의 뜨거움을 곁불 쬐듯 조금씩 느끼고, 바라고, 선망했던 거다.


난 지금도 쉽게 뜨거워지지 못한다.

원래 성격일 수도 있고, 아님 남보다 다치기 쉬운 성정에 겁이 나서일 수도 있겠다.

결국 늘 후회했고, 후회했다.

그래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나를 자꾸 내몬다.

당장 눈앞에 놓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는

내 인생에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자신할 수 없는 물리적 나이가 됐다는 초조함.

30년 넘게 했던 일을 그만두고, 1년여를 꼬박 방황하고 고민하다

이제 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 덜 불행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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