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딧불>과 <나는 문제없어>1

지난 3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by 딜레탕트 줌마

일을 그만두면서 생긴 큰 변화 중 하나는 최신 가요의 흐름에 둔감해졌단 것이다.

일을 할 땐 운전을 하면서 FM라디오를 듣는 것이 큰 낙이었다.

그런데 외출할 일이 현저히 줄어들고, 외출을 하더라도 가까운 거리가 대부분이다 보니,

라디오를 들을 일이 많이 없어졌고, 새로운 노래를 일부러 찾아 듣지 않는 한 접하기

힘들어진 탓이다.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를 듣게 됐다.

‘ 어~ 이거 뭐야..?’

귀에 꽂히는 가사에 금방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

누가 부른 노랜지 찾아보게 됐고,

이미 큰 히트를 치며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노래라는 걸 알게 됐다.

참 좋은 노래가 나왔구나 하며 몇 번이고 계속 돌려 듣게 됐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30년 전 내가 20대일 때 한창 듣고 불렀던 노래

<나는 문제없어>였다.

두 노래 모두 삶에 지친 이를 격려하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차이는 20대의 나와 50대의 내가 바라보는 인생에 대한

달라진 시각 때문인 것 같기도 했고,

1993년과 2025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달라진 모습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 첫 사회생활에 발을 디뎠을 때가 1991년 12월.

세상은 내 생각만큼 관대하지 않았고, 전투력도 실력도 부족했던 난

거의 매일이다시피 화장실에서 울고 나오곤 했다

누군가의 지적과 비난을 흘려 넘기기엔 너무나 유약했었다.

거기에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일을 놓고 돌아서 다른 길을 찾기엔 융통성도 용기도 없었다.

난 미련하게 2년 가까이 버티고 버텼다.

매일이다시피 친구와 동료와 술을 마셨고,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때 거의 빼놓지 않고 부르던 노래 중 하나가 <나는 문제없어>였다.

악을 쓰다시피 이 노래를 부르며 나 자신에게 ‘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내곤 했었다.


<나는 문제없어>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짧은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 곳을 잃어 가고

내가 꿈꾸던 사랑도 언제나 같은 자리야

시계추처럼 흔들린 나의 어릴 적 소망들도

그렇게 돌아보지 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짧은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 곳을 잃어 가고

내가 꿈꾸던 사랑도 언제나 같은 자리야

시계추처럼 흔들린 나의 어릴 적 소망들도

그렇게 돌아보지 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그리고 30년 후 난 여전히 그 일을 하다가 은퇴했고,

돌아보면 그저 밥벌이하고 살았을 뿐, 크게 성취한 것도 없었고, 보람찼던 것도 없었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름 치열하게 살아낸 지난 30여 년의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해 버리기엔 억울하지 않은가

그런 내 마음에 와닿은 노래가 <나는 반딧불>이었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고, 성취와 성공을 목표로 했던 시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쥔 것 없이 그저 그런 인생으로

앞으로도 그다지 큰 변화 없이 살아갈 내게

나 자신 조차도 하기 어려웠던 말


" 그래도 괜찮아 ”


<나는 반딧불>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

하늘로 올라가 초승달 돼 버렸지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너무 멀리 갔죠

누가 저기 걸어놨어 누가 저기 걸어놨어

우주에서 무주로 날아온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돼 버렸지

내가 널 만난 것처럼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란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언젠가 별이 될 줄 알았던 나의 20대엔 어떻게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노랫말에 고무되어 넘어지지 않겠다고 악을 썼다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와선,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는

노랫말에 고개 끄덕이고 있는 것이다.

원했던 것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있으니 ‘괜찮다’ 정도의 자기 위로도 해 줄 수

없다면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고잉 그레이(going grey) 아줌마는 그랬다 치고

요즘 사람들은 왜 <나는 반딧불>을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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