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요즘 사람들은 왜 <나는 반딧불>을 좋아할까?
이 노래 가사는 언뜻 보면 자존감이 굉장히 높은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포기와 자기 타협으로 얻은 위안정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문제없어>가 1997년 IMF을 지나며 다시 인기를 얻었던 건
세상에 꺾인 무릎을 짚고 다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더 노력하고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기 때문일 터였다.
반면 <나는 반딧불>에선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 목표지향적인 태도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유혹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지난 30년 사이 세상은 싸우기보다 타협해야 하는 곳으로
보장 없는 꿈을 꾸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곳으로
변해 온 건 아닐까?
내 주변의 또래들은 이런 얘길 하곤 한다
“ 청년주택이니, 출산지원금이니 요즘 젊은이들은 혜택을 참 많이 받는 거 같아”
“ 청년고용, 노인일자리는 있지만 우리처럼 애매한 나이엔 할 일이 별로 없어”
“ 은퇴하고 국민연금 받기까지 몇 년이 비어. 그 사이에 먹고살 걱정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청년이었을 때는 지금의 청년들만큼 취업이 어렵지 않았다.
지금처럼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자식의 삶에 절대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 7,80대 들은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절대빈곤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지나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식들에 대한 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 자식들에게 기대기 힘든 긴 노년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30년 전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했고, 편해졌지만
우리는 모두 30년 전보다 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나는 문제없어’ ‘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다짐과 외침만으론 넘을 수 없는
너무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선 사람들에게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당신의 삶이 의미 있고, 빛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노래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 나는 문제없어>를 목청껏 불렀던 30년 전의 나에게
30년 후의 나는 <나는 반딧불>을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