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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한중 Oct 30. 2020

어머니와 편지

손 편지 한 통이 효도다.


안중근 의사(義士)의 어머니 조마리아(趙姓女) 여사는 1862년 4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927년 7월, 66세의 나이로 상해에서 작고(作故, 위암)하여 만국공묘(현. 쑹칭링 능원)의 월남 묘지에 안장(安葬)됐으나, 도시(공원) 개발로 지금까지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건 그가 작고한 지 81년이 지난, 2008년 국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追敍)되어 조마리아 여사도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며, 슬하의 3남 1녀 자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고 한다. 올해가 안중근 의사 순국(殉國) 110주년이 되는 해(3월 26일)로 어머니(엄마)의 거룩함을 생각해 본다.    



 

◇ 어머니의 편지


중국 하얼빈 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1909년 10월 26일)한 혐의로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1심)은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1910년 2월 14일) 한다.


이 소식을 접한 조마리아는 여순(뤼순) 감옥에 있는 안중근에게 전할 “어머니의 편지”를 두 남동생 손에 들려 보낸다.


그 편지는 단호(斷乎)하면서 결기(決起)에 차 있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가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現世)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天賦, 하나님)의 아들이 돼 이 세상에 나오너라.』


얼마 안 있으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아들(1910년 3월 26일 절명絶命, 31세)에게 한 말은 ‘사랑한다, 보고 싶다’가 아니라 ‘죽으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 독립운동사(史)에서 가장 뜨겁고 슬픈 어머니의 편지였으며, 그 자체가 독립운동였다”라고 사람들은 전(傳)한다.     


안중근이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될 때까지 조마리아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면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죽음을 앞둔 아들의 얼굴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안중근 역시 ‘고등법원에 항소하여 감형이라도 받아보자’는 일본인 변호사의 설득이 있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무죄며, 무죄인 나에게 감형을 운운하는 것은 치욕이다”라며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훈육(訓育) 덕이었으며, 올해로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이지만, 어머니의 유해(遺骸)와 함께 찾지 못하고 있다. 일제는 조마리아 여사에 대해서도 ‘아들 교육을 잘못 시켰다’는 이유로 심문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일제에게  『내 아들이 나라밖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나 나라의 일로 죽는 것은 국민 된 의무이다. 내 아들이 나라를 위해 죽는다면 나 역시 아들을 따라 죽을 따름이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해 당시 일본인들에게 ‘시모시자(是母是子, 그 어머니에 그 아들)’로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 그리고 어머니


미국의 제36대 대통령 ‘린든 존슨’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때 어머니에게 쓴 편지는, 그가 성장하는데 어머니의 편지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오늘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어머니의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저에게 어머니의 편지는 늘 더 많은 힘과 새로운 용기 그리고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불 독 같은 고집을 줍니다.


어머니의 편지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늘 어머니의 편지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편지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슬픔과 실망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어머니의 존재는 그 어떤 시련에도 견딜 수 있는 원천으로 존슨 역시 세계 최강의 미국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또 한 분의 어머니가 있다. 어느 날 ‘할(어) 머니 한분이 보따리 두 개를 들고 동네를 한 시간째 서성이고 있다’는 신고가 한 파출소에 걸려왔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우리 딸이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있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치매를 앓고 있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수소문 6시간 만에야 딸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고, 병원에 도착한 어머니는 딸을 보자마자 끝까지 놓지 않고 있던 보따리를 풀었다. ‘어서 무라(먹어라)‘ 어머니가 출산한 딸을 위해 준비한 것은 이미 다 식어버린 ’ 미역국과 나물반찬, 흰쌀밥‘ 그리고 ’ 이불‘이었다.


치매에 걸렸어도 엄마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기억은 「우리 딸이 아기를 낳았다」였다. 딸은 눈물을 펑펑 쏟았고, 병실도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 어머니께


어머니는 늙고, 아프고 때로는 치매도 찾아온다. 우리가 힘들고, 고달플 땐 어머니(엄마)를 찾지만, 자주 연락하지 않으면 자식이어도 잃어버린다고 한다. 나 역시 어머니가 컴퓨터나 모바일은 못해도 가끔 손 편지로 지혜를 주실 때면 그렇게 죄송할 수가 없다.


“얼마나 피곤하냐? 자만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해서 유정의 미를 거더라 엄마의 가슴은 뛴다.” 편지는 단순한 글이나 문장을 넘어 누구든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랑과 정성, 애틋한 마음을 담아 전달할 수 있기에 받는 사람에겐 큰 용기와 힘을 준다.


오늘 저녁엔 전화나 카톡ㆍ문자ㆍ메일 대신 어머니께 손 편지 한번 써보자(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계셔도 좋다). 어쩌면 오늘 쓰는 한 통의 손 편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이자, 효도요, 그리움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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