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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한중 Oct 30. 2020

아버지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

    

“들에서 돌아오는 당신의 모자나 옷을 받아 들면, 거기서 나던 땀내 음 같은 것. 그게 아버지 생(生)의 냄새였다면 지금 내게선 무슨 냄새가 나는지. 나는 농토가 없다… 돌아오는 저녁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나는 아버지의 농사를 생각한다.


그는 곡식이든 짐승이든 늘 뭔가 심고 거두며 살았는데, 나는 나무 한 그루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그런 날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상국)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은 ‘아버지’다. 그러기에 가장 무겁고도 힘겨운 단어라고 한다.


매일같이 일터(직장)로 향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즐거움조차도 사치라며, 자식에게는 늘 “알았다, 고맙다, 그렇게 해라, 나는 괜찮다, 그래 됐다”가 아버지가 하는 대답(말)의 전부다.  

    


아버지Ⅰ) 『한 칸짜리 택시 안이 생활의 터전인 아버지. 저마다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운전대를 잡는다.

이른 아침에 나와 해가 중천에 걸리고 나서야 겨우 먹는 첫 끼, 기사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기에 요리시간이 짧은 간편한 식사를 위해 기사식당을 주로 이용한다.

뜨끈한 밥 한 그릇으로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속을 채우고 고단함을 위로(달래) 받는 곳이다. 그곳은 때로는 단순한 밥집을 넘어 지친 몸을 뉘는 휴게소이자 사랑방 그 이상이기도 하다. 운전대를 놓고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온돌방이 있는 곳도 있다.』

  


아버지Ⅱ) 『길을 나서면 밥 동무는 없다. 시속 130km로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 맨 앞자리에 앉아 똑같은 간격으로 놓인 철길 아래 콘크리트 침목이 발밑으로 끝없이 사라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끼니를 삼킨다.

철마와 철마가 지나치는 풍경만이 철도노동자(기관사)의 밥 동무고, 두 평 남짓한 열차 기관실 앞에 놓인 ‘자동 정지 장치’가 그의 밥상이다.

디젤기관차가 선로 위에서 덜컹거릴 때마다 도시락을 손에 쥔 그의 몸은 땅 밑에서 올라오는 진동을 그대로 전달받아 대책 없이 흔들렸다.』

           


아버지Ⅲ) 『빛 대신 시커먼 어둠이, 공기 대신 잿빛 먼지가 가득한 지하 600m 막장(갱도 坑道)을 승강기를 타고 내려간다.

손에는 도시락이 든 검은 봉지 하나와 갈아입을 옷 한 벌이 든 가방이 들려있다. 막장에선 도시락은 고리에 걸어 천장에 매달아 둔다.

식탁에 놓으면 광차에 끼어 내려온 쥐들이 죽자 사자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석탄을 캐며 막장에서 번 돈으로 세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빚도 모두 갚았다.

광부로 저물어가는 자신과 함께 저물어 갈 탄광촌의 운명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아버지Ⅳ) 『재활용 분리수거, 택배ㆍ주차관리, 음식물쓰레기 처리, 공용구역 청소, 화단에 물 주기, 민원처리 등 잡일과 관리사무소ㆍ자치회ㆍ부녀회ㆍ동 대표가 내리는 별의별 지시가 100가지는 된다.

그렇다고 아파트 주민이 모두 김갑두(‘갑질의 두목’이라는 뜻의 별명)는 아니다. 고마운 사람도 많지만 아파트마다 악질이 한두 명은 있다. 김갑두가 보기에 경비원은 마음대로 켰다 껐다 하는 스위치지 사람이 아니다.

비 오는 날은 공동작업이 없고 밤까지 오면 주차단속도 없다. 불법주차 스티커 때문에 욕설을 듣는 곤욕을 피할 수도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과 낙엽, 꽃잎까지도 모두 경비원이 치워야 할 쓰레기다. ‘빗방울님’만 예외다.』



   

신문에 보도된 대한민국 아버지의 일터다. 하는 업무는 각기 다르지만, 분명한 건 당신의 두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이 바위와 같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에게 가족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자, 전부이다. 나는 아버지가 없지만 어릴 적 아버지는 매우 엄격(嚴格)하셨다.


저녁이 되어 아버지가 귀가할 시간이면 형제는 집안 밖 청소는 물론 밖에서 아버지의 큰기침 소리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는듯하면 재빨리 뛰어나가 마중해야 했기에 놀고 있어도, 잠을 자도 안 된다.


일을 그만두신 후(퇴직)에도 아버지는 매일같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출근하듯 시내를 돌아오곤 하셨다. 병마(病魔)와 싸우면서도 한시도 가만히 계시질 않았는데 떠나신 지 어느덧 18년이다.


세상의 아버지는 1인 4역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자신의 삶, 가장으로서의 삶 그리고 자식으로, 남편으로서의 삶」이 당신이 져야 할 의무요, 당신의 책무라 하신다.


평소에는 말이 없어도, 일터에선 인정 많고 가슴 따뜻한 나약한 분이다. 당신이 자라던 시절 배고픔과, 가난, 배우지 못한 한(恨)을 가족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 외롭고, 힘들지만, 일터에서 쏟는 땀방울과 사람 냄새가 그리도 좋다며 즐거워하신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는 뒤돌아서 가슴으로 운다고 한다.


자식을 키우고, 바르게 가르쳐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나보낸 후에도 맘 편히 쉴 수가 없는 분이 아버지일 것이다. 효도는 흉내 내기도 어렵다는데,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일터보다 아버지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도리요, 효도의 시작이다.


 왼 종일 한 칸짜리 택시 안에서, 덜컹거리는 철길 위에서, 탄가루 날리는 지하 갱도에서, 후미진 아파트 경비실에서 외로움과 때로는 자존심을 억누르는 세상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쉼 없이 일에만 매진하다 병으로 떠난 동료의 소식을 접해도, 1년 계약직의 젊은 택배원이 새벽 배송 중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는 방송을 시청하시고도 아침이면 말없이 집을 나서신다.


먼~후일 아버지가 종착역(終着驛)에 도달할 즈음,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주던 소중한 일터가 세상의 아버지를 대변(對辯) 해 줄 것이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희망은 우리에게 말한다고 한다. “믿으라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더 나은 복지가 제공될 수 있을지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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