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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보기 Feb 29. 2016

나 만의 'B컷'

다시 보면 A컷이 될 수도 있는...

 'B컷' 선택되지 않았던 사진들의 반란...


사진을 취미로 가지면서 수 많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 대개 2가지의 경우가 생긴다.  하나는 찍고자 하는 사진을 미리 정하고 의도된 사진을 찍는 경우,  나머지 하나는 그냥 무턱대고 찍었다가 나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경우이다.  어떤 경우이든, 많은 사진 속에서 '선택'되는 사진이 생기고, 나머지 사진들은 그냥 하드 속에 묻히고 만다.


사실, 이렇게 묻히는 사진들은 대개 컴퓨터 하드디스크 용량을  잡아먹는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언젠가 하드디스크 용량 부족 상태가 발생할 경우 지워지기도 한다.  감히 'B컷'이라고 얘기하기도 힘든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우연하게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경우,  그중에서도 특별히 다시 눈에 들어오는 사진들이 생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마침, 사진들을 살펴볼 때의 내 정서와 느낌... 그리고 상황에 따라 'B컷'으로 하드디스크 속에서 잠자던 사진들이 'A컷'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일요일 아침,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찍은 사진,  이른 일요일 아침의 매장은 빈자리만 가득하다.


일요일 아침, 교회 가기 전 집사람과 잠시 들렀던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자연스럽게 부부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일상이 주제가 되어 버려서...  먹음직스러운 도너츠와 커피, 잠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즐기는 아내의 실루엣 등이 'A컷'으로 선택되었고,  빈자리만 가득한 이 사진은 그렇게 묻혔다.   


그런데, 오늘은 저 빈 의자가 무엇을 얘기하는 것 같다.  지난 저녁 연인의 달콤한 이야기도 들리고, 정신없이 과제를 하다가 돌아간 어느 학생의 이야기도 들린다.  
'B컷'이 새로운 주제로 'A컷'이 되는 순간이다.




집앞 공원에서 아내가 찍어준 사진,  역광 상황에서 찍어야 했기에  매뉴얼로 두고 노출 고정해서 아내는 셧터만 눌렀던 사진


집 앞에 제법 잘 꾸며진 '북서울 꿈의 숲' 이란 공원이 있다.  가끔 쉬는 날이면 가족들이 바람을 쐬러 놀러 가는 곳이다.  이 날은 늦은 오후에 갔기 때문에 빛이 좋았다.  그래서 아내라 아이의 부드러운 빛의 역광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 사진은 내 사진을 찍고 싶어서, 카메라를 다루는데 서툰 아내를 위해 매뉴얼로 두고 노출 고정으로 아내가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그야말로 느낌이 좋게 잘 나왔는데... 사진 속 모델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B컷'이 된 사진이다.


사진이 'B컷'이 되는 경우 중 촬영된 사진의 품질보다 피사체가 맘에 안 들어서 선택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마음을 조금만 비워도 'A컷'이 충분히 될 수도 있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집에서 렌즈의 노출과 촛점을 테스트한 사진,  이 사진은 그냥 처음부터 'B컷'이 될 운영이었다.


사진 촬영을 나가기 전 카메라의 배터리는 충분한지, 비슷한 정도의 밝기 환경에서 ISO와 렌즈의 밝기와 조리개 설정은 이 정도로 하면 충분한 것인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대충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진은 처음부터 'B컷'이다.  아니, 'B컷'조차 과분하여 찍자마다 삭제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사진은 이사오기 전 전에 살던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근데, 다시 보니...  그때 그 집에서의 추억도 생각나고 무엇보다 아련한 느낌의 노출과 분위기가 좋게 느껴진다.


의도하지 않았던 'B컷'의 부활도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B컷' 사진도 함부로 지우지 못한다.




교회 성가대에서,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스냅사진이기 때문에 'A컷'으로 선택되지 못했다.  요즘 미러리스 카메라와 성능 좋은 렌즈가 포함된 핸드폰이 많이 보급되어  이런 종류의 스냅사진들이 다들 넘쳐 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진들은 사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사진을 시간순으로 묶어서 스토리를 만들면 'A컷'으로 부활할 수 있다.  조금의 수고와 노고가 필요하지만, 이런 패키지 사진들은 추억을 남기는데 매우 훌륭한 방법 중에 하나다.


'B컷'들을 모아 시간순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순간 'A컷'이 된다.



모델이 없어서 아쉬운 사진


이 사진은 '선유도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보통 모델을 많이 세우고 찍는 촬영 포인트이다.  모델도 없고 조명도 없는 '홀로 사진사'에게는 이런 포인트들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나중에 어쩌면 모델을 데리고 오게 될 경우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둔 'B컷' 사진이다.

 

하늘공원에 오르기 전에 찍은 사진

이 사진은 억새로 유명한 상암동 '하늘공원'에 오르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저 전기자동차가 있는 위치가 사실 공원에 오르는 지그재그 계단을 찍기 딱 좋은 포인트이다.  'B컷' 사진들은 'A컷' 사진들을 위한 훌륭한 정보제공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위의 전기자동차 위치에서 약간의 광각렌즈로 찍으면 얻을 수 있는 사진... 이 포스트의 유일한 'A컷' 사진


'B컷' 사진들은 'A컷' 사진들을 위한 훌륭한 정보제공의 역할을 하는 경우 다시  살아난다.




오랜만에 하드디스크 속에 잠자고 있던 'B컷'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비록 현재는 선택되지 못한 'B컷'으로 컴퓨터 하드디스크 속에서 잠자고 있지만,  조금만 다시 돌아보면 훌륭한 'A컷'으로 부활하는 사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시간 될 때  한 번씩 잠자던 사진들을 꺼내 보는 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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