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이 쓸모가 생길 때

시선을 바꾸면 보이는 것들

by 슬그머니

우리 집은 시골이었다.


밤이 되면,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별이 쏟아지고

풀벌레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우는

그런 평온한 곳이었다.


학교를 다니려면, 버스를 타야했다.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다녔다.
가끔 부모님께서 차로 태워주실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길을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 길은 농로였다.

푸른 벼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옆에 작은 개울이 흐르는 그런 곳이었다.

푸른 하늘은 항상 펼쳐져 있었고,

작은 풀들과 나무들이 나를 기다리는 곳이었다.


엄마는 종종 나를 데려다 주시면서
그 농로 옆의 풀과 나무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차에 흠집 나겠다.”


무성하게 자란 풀들에 차가 스칠까 걱정하시며

“언젠가는 베어버려야 한다”고 불만을 드러내셨다.


사실 조수석에 앉은 나도

그 풀잎들이 창에 닿을 때마다 위협적이었고,

차가 긁히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렸었다.


그래서 그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학교가 일찍 끝난 날.

끓어오르는 태양 아래 버스에서 내려

그 농로를 홀로 걸었다.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땀이 흐르고,

땅은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때
시원하고 선선한 그늘에 드러섰다.

그 나무 숲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리고,
몸에 닿는 시원한 그늘에

숨이 그제야 쉬어졌다.
그 나무들이 나를 살려주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땐 불편했던 그곳이
걸어서 지나갈 땐 나를 살리는 휴식처가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한 가지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던 나를 돌아 보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한 가지만 바라보고
한 쪽 입장으로만 생각하면서 살면,
세상을 너무 편협하게 본다는 것을.


나의 처지, 나의 상황에 따라
세상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불만이던 그 풀과 나무들은
나에겐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누군가에겐 짜증을 부르는 것이
누군가에겐 평온과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뒤로 나는
하나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지 않기로 했다.

여러 시선으로, 여러 감정으로,
그리고 여러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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