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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Aug 24. 2020

인공수정, 어떠세요?

2019년 1월 24일의 일기


정액검사 결과가 나왔다.




개미씨는 다른 건 다 정상 범주인데 직진운동성에 문제가 있었다. 8%밖에 되지 않았다. 32% 이상이 정상, 4-50%가 평균이라니 상당히 낮은 수치였다. 한마디로 정자의 92%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같은 자리를 맴돌거나 목적지까지 가지 못한 채 가다 만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건강한 정자를 골라 넣어주는 인공수정을 추천한다고 했다.



인공수정이라—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인공’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뭔가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단어의 느낌과는 달리 인공수정 과정은 자연임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질 좋은 정자를 추출해 여자 몸에 넣어주면 끝이다. 수정과 착상은 오롯이 나의 몸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 거라 자연 임신과 거의 비슷한 확률이라고.


(따지고 보면 인공수정이란 말은 잘못됐다. 인공적으로 체외에서 수정시키는 것은 사실 시험관이다. 인공수정은 수정이라는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음에도 왜 인공수정이라고 불릴까? 오히려 ‘정자선별주입술’ 같은 말이 더 맞는 것 아닐까?? 흠흠..)



방법이나 확률을 다 떠나서—

만약 아기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면 그건 운명이니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거스르며 얻어내려는 것은 욕심이라는,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인공수정, 한 번 해볼까? 아니면 좀만 더 기다려볼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개미씨는 그저 니 하고픈대로 하란다. 하여튼 도움이 안된다니까...






배란일 전 마지막 초음파에서 나는 난포가 오른쪽에서만 두 개 겨우 자랐고 왼쪽은 반응이 없다고 했다. 반응이 없던 지난주에 비하면 일주일새 두 개라도 자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선생님 말씀으론 페마라보다도 폴리트롭, 그러니까 주사 덕분에 두 개라도 자란 것 같다고 하셨다. 아침 일곱시마다 내 배에 내 손으로 주사놓은 보람이 있었다. (솔직히 처음이 힘들었지, 정말로 어렵지 않은 주사였다. 이틀째부턴 그냥 푹푹 찔렀다는;;)


그렇지만 나처럼 난포가 소진되지 못하고 쌓여있는 경우, 배란이 되더라도 난자의 질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한참이 지나도록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면 그중 유통기한이 지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과배란에 성공한다 해도 건강하고 질 좋은 난자가 나와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숙제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래저래 우울함이 바닥을 쳤다. 휴가 내기를 잘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병원 다니려면 이 정도로 무너지면 안되는데, 언제쯤 다른 사람들처럼 오전에 병원갔다가 아무렇지 않게 오후 출근해서 사람들 보고 웃으며 일할 수 있을까. 진료는 고작 10분 정도인데도 이것 때문에 나의 멘탈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다. 피곤하다. 빨리 집에 가서 한숨 자야지.




Dubrovnik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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