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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Aug 23. 2020

나의 난소 나이는 몇 살일까

2019년 1월 18일의 일기(2)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남들은 28일, 30일 시계처럼 정확하다던데, 나의 주기는 36일, 40일, 30일.. 매달 조금씩 달랐다. 한 달을 건너뛰는 일은 흔했고 몇 달씩 생리가 오지 않아 병원에서 호르몬 주사를 맞은 적도 두어번 있긴 했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그게 대수인가. 생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좀 불규칙할 뿐이다. 나처럼 불규칙한 주기를 갖고 있던 지인도 결혼하자마자 임신이 되었다. 나라고 이 정도가 큰 문제일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지난주, 과배란약을 처방받고 5일간 복용했다. 오늘은 나팔관 조영술 후, 일주일간 난포가 약발을 잘 받았는지까지 확인하는 날이다. 나의 난포들은 과연 잘 자랐을까...?


진료실에서 다시 만난 선생님은 나의 나팔관 영상을 보여주신 후, 먼저 지난주 채혈한 검사 결과를 알려주셨다.


-amh 수치로 난소나이를 가늠하는데 하나비님은 8.9로 나오셨어요. 30대 보통 수준이 3점대인걸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편이시죠.


수치가 높다는 건 무슨 뜻일까.
나의 난소나이- 난임검사를 시작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누구는 삼십대인데도 난소나이가 사십대라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나는 어떨까, 나의 난소는 몇 살쯤 먹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나이에 예민한 시기에 장기(난소를 장기라 하긴 좀 그렇지만)에까지 나이를 매겨야 하나. 마치 선생님에게 내 생식기능의 유통기한을 통보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게 난소나이로 치면 몇 살 정도인가요? 


-수치가 높을수록 나이가 어리다고 하는데 이 정도로 높은 수치에선 나이가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그동안 배란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을 가능성이 커요. 무배란 월경이라고 하죠. 제 때 배란되지 못하고 남은 난포들이 난소에 쌓여 있어서 수치가 높게 나오는 거예요.


-......


-이런 케이스라면 과배란 자극을 줬을 때 난포들이 갑자기 엄청나게 자라기도 해요. 아니면 기능이 떨어져서 반응이 없던가.. 어느 쪽인지 한 번 볼까요?




나는, 자라지 않는 쪽이었다.


선생님 말씀으론 클로미펜의 영향으로 지금쯤이면 크기가 커지고 있는 난포가 여러 개 보여야 하는데 눈에 띄는 게 없다고 하셨다. 내 난포알들은 일주일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자그마한 크기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궁 내막도 전혀 도톰해지지 않았고, 한마디로 내 몸은 여전히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고 하셨다.


-약을 바꿔서 다시 해보죠.


선생님께선 간혹 클로미펜이 듣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페마라라는 약으로 바꿔 배란일 전까지 다시 5일간 복용해보자고 하셨다. 페마라 또한 배란유도제로 사용되는 약인데 두 약의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고 한다.


클로미펜

   1. 복용시 난포가 여러 개 자란다.

   2. 자궁내막이 얇아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3. 가격이 싸다.

페마라

   1. 난포가 한 개만 자란다.

   2. 자궁내막이 얇아지지 않는다.

   3. 가격이 비싸다.


페마라가 비싼 이유는, 해당 약의 원래 목적이 유방암 치료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 유방암 치료제의 부작용이 난포를 키우는 것(?)이라 난임 환자에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배란유도제로 정식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처방받아 복용할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페마라와 함께 폴리트롭이란 주사까지 처방받았다. 자가 주사, 그러니까 내 손으로 내 배에 주삿바늘을 꽂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렴풋이 자가 주사는 난임치료의 마지막 단계쯤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막 발 디딘 나같은 초보(?)에게 주사라니, 이건 갑자기 너무 난이도 상승 아닌가요?!


놀라서 사색이 된 내 낯빛을 보신 선생님께서는 활짝 웃으시며(정말 미인이시다) 스스로 놓기 무서우시면 병원에 와서 맞으셔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맞아야 하고, 더구나 냉장 보관해야 하는 주사를 맞으러 이 병원에 오기에는 나에겐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터가 있었다.


내가,

내 손으로,

내 배에,

주사를???




주사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 놓는 법을 알려주셨다.  


-이렇게 뱃살을 딱 잡으시고 푹 찌르시면 돼요.

 

간호사 선생님은 너무나 쉽게, 망설임 없이 내 두둑한 뱃살에 바늘을 밀어 넣었다.


-바늘도 얇고 피하지방에 놓는 거라 어렵진 않으실 거예요. 놓기 되게 쉬운 주사예요.


하, 쉬운 주사라니 어폐가 있다. 선생님, 쉬운 주사 어려운 주사가 아니고 그냥 주사 자체가 어려운 거라구요!


할 수 있다는 격려가 담긴 선생님의 말씀은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차라리 주사 맞으러 매일 병원으로 와도 되냐고 여쭤보니 아예 쐐기를 박으신다.


-그러셔도 되는데 이제까지 주사 맞으러 병원에 오신 분은 단 한 명도 없으셨어요.


역시 세상의 엄마들, 아니 여자들은 위대하다. 나, 잘할 수 있을까? 제대로 찔러 넣을 수 있을까?


https://youtu.be/2L0cmI-CGvU

으악.








오늘 오후엔 개미씨도 정액검사를 위해 병원에 방문했다. 신랑은 아이에 대해 나만큼 애타지는 않는 듯 하지만 같이 검사받아봤으면 좋겠다고 하니 선뜻 동행해 주었다. 난임 치료는 당연히 부부가 같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정액 검사라는 과정이... 아무래도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큰 거부감 없이 거사(?)를 홀로 치루고 나왔다. 방 안에 잡지와 영상에 있었는데 취향이 아니었지만 열심히 했다며(??) 웃는다. 결과는 다음주 진료 때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신랑에게 문제가 있다고 나온다면 나의 죄책감이 덜어질까? 아니면 점점 희박해지는 가능성에 좌절하게 될까. 어떤 결과가 나오던 마음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올림픽공원, 서울(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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