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비 Aug 21. 2020

난자에게로 가는 좁고 먼 길 - 나팔관 조영술

2019년 1월 18일의 일기(1)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병원에 갔다.



맘까페 난임 게시판엔 나팔관 조영술의 악명이 자자했다. 엄청나게 아프다는 사람이 많았다. 시술 전 집에서 진통제를 미리 복용하라고 처방해준 것만 봐도, 여기에 고통이 있을 것이란 예고가 아닌가. 긴장이 되었다.


나팔관 조영술은 말 그대로 자궁을 통해 나팔관에 조영제를 흘려넣는 시술로, 자궁에서 난소로 이어진 관이 잘 뚫려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조영제를 정액이라 치면, 이 시술을 통해 정액이 난소까지 무리없이 도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으니 자궁내 정액 이동 시뮬레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간혹 중간에 유착이 있거나해서 막힌 부분이 있다면 정자와 난자가 만날 수조차 없을테니 나팔관 조영술은 난임 검사에 필수 항목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뚫어주면 유착이 없었다 하더라도 길이 잘 열려 임신이 잘된다는 썰도 있다. 과연??)




탈의 후 시술실에 누워있으면 의사 선생님이 오신다. 어떤 기구를 어떻게 쓰는지는 누운 상태에선 알 길이 없으나(보인다 해도 보고 싶진 않다) 느낌상으로는 주사기같은 기구를 이용해 피스톨을 쭈욱 밀어 넣으며 조영제를 넣어주는 것 같은데 실제 비슷하게 하는지 아니면 나의 상상력인지 모르겠다.


시술은 겁 먹은 것 보다는 참을만 했다. 안아팠다는 말은 아니다. 조영제가 들어가면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는데 눈을 감으면 모니터를 보지 않아도 지금 조영제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나의 나팔관 지도가 저절로 그려질 정도였다. 농축된 생리통이 아랫배를 쥐어짜는 느낌이랄까. 힘을 빼야 한다는데 아프다보니 그게 잘 안돼서 어려웠다.


양 쪽 다 잘 뚫려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시술은 끝이 났다. 길게 느껴졌지만 오 분, 길어야 십 분 남짓이었던 것 같다. 유착이 없다는건 어쨌든 다행이다. 시술 내내 꽤 낑낑댔는데도 간호사 선생님이 이 정도면 잘 참으신거라 격려해 주셨다. 아픔에 비명을 지르거나 우는 사람들도 많단다. 선생님 말씀으론 이게 생리통과 비슷한 통증이라 평소 생리통이 있는 편이면 익숙하다보니 더 잘 참고, 유착이 없으면 또 덜 아프다 하셨다.  다행히 나는 둘 다 해당 되었다.



선생님, 이게  나팔관이에요?

시술 후 진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의사 선생님이 나의 나팔관에 조영제가 들어가는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는데, 나팔관이 내가 알던 것과 차이가 있어 좀 놀랐다. 흔히 도식화된 이미지에서 나팔관은 역삼각형의 자궁 양쪽 상단에서 뻗어나와 우아하게 팔로 난소를 감싸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초음파에 찍힌 내 나팔관은 아무렇게나 흘려 놓은 가느다란 실가닥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내가 알던 나팔관


실제 나팔관 모습  (출처: https://dallasivf.com)


좁은 부분은 심지어 머리카락 두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포들이 이렇게 꼬부랑거리는 길고 좁은 길을 달려가야 한다는 말인가. 정자난자가 서로 잘 못 만나는게 당연해 보였다. 어찌저찌 수정란이 되어도 데굴데굴 다시 자궁 쪽으로 굴러가면서 세포분열까지 해야 한다는데 이렇게 험한 길이라니. 뻥뚫린 8차선도로여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좁고 길고 구불거리다니!


나의 나팔관 영상을 통해, 나는 임신이라는 것이 꽤 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받은 것 같았다. 정자가 저 좁고 먼 길을 통과해 한달에 겨우 하루, 아니 몇시간만(나이를 먹을수록 배란후 난자의 생존 시간이 짧아진다고 한다. 35세 이상이면 6시간 정도) 나와있는 난자와 만나 수백수천마리의 경쟁자 중 하나로 선택되어 수정란이 되고, 또 그 수정란은 다시 자궁에 안착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밤낮없이 저 어둡고 긴 터널을 되돌아 굴러간다... 이 정도면 임신이 안되는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 임신이 되는 것이 기적인게 아닐까..??



........모니터를 보며 이런 엉뚱한 생각에 한참 빠져 있는데 순간 화면이 바뀌며 나를 현실로 다시 데려다 주었다.


지난주 검사한 결과가 나왔어요



선생님은 초음파 영상을 끄고 지난주 채혈했던 호르몬 검사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마우스를 이곳 저곳 클릭하며 말씀하셨다. 어쩐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St.Paul de Vence (2013)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난임 검사를 받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