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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Aug 14. 2020

새해, 난임 검사를 받다.

2019년 1월 11일의 일기


애쓰며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 꼭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평범한 삶에서 굳이 욕심낼 필요 없다고. 나에게 없는 것을 헤아려 줄을 긋듯 이루어 나가는 치열한 삶보다, 잘 웃고 잘 먹는 편안한 일상에서 더 위안을 받는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지나친 몰두를 하게 되는 건, 마음속 차마 떨치지 못한 나의 남은 욕심이겠지. 쿨—하고 싶지만 타고난 성정이 그렇지 못한 것을.


매일 나에게 던지는 질문,

나는 아기를 갖고 싶은 것일까.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 작년 5월 유산을 한 번 한 뒤로 매달 노력하는데 아기는 다시 와주지 않았고, 어느새 해가 바뀌어 나는 한 살 더 먹어버렸다. (망할)한국나이 서른일곱.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신세가 된 것 같아 초조하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순수하게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일까 아니면 내 신체 데드라인에 대한 압박감일까. 아기를 낳은 후가 더 무서운 현실일 텐데, 나는 미래의 아기에게 얼마나 준비된 엄마일까. 솔직히 아무래도 자신은 없다.



하여 오늘, 내가 난임 검사를 받은 건 다소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이제 병원에 가봐야하나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그동안 선뜻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만약 자연스럽게 오지않는다면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는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오늘, 운명이 내게 다른 말을 걸어왔다.



난임 검사는 원한다고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호르몬은 생리 주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생리양이 가장 많은 이틀째 날을 기준으로 본다고 한다. 나는 주기가 조금 불규칙한 편이라 미리 날짜를 잡고 휴가를 내기가 좀 쉽지 않았는데, 이번 달 생리가 예정일과 틀어지면서 마침 별 뜻없이 낸 휴가날과 맞춰진 것이 꼭 병원에 가보라는 계시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것을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용기를 내어 산부인과에 전화로 예약을 잡았다.




유산 이후 오랜만에 산부인과를 다시 찾았다. 꽤 규모가 있는 병원이라 난임센터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작년을 떠올리게 했다. 산모수첩을 달라는 간호사에게 저 유산했어요,라고 말하던 기억. 별거 아니란 듯이  생리라 치라던 의사 앞에서 울지 않으려 꾹 참다가 돌아가는 마을버스에서 눈물을 쏟았던 기억. 울면서 이 터널이 앞으로 매우 길어지면 어쩌나, 왠지 그럴 것 같다, 슬프게 예감했었는데 지금 병원으로 향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그 예감이 어째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좀 씁쓸했다.



이 곳의 난임센터는 병원 건물에서 따로 떨어져 있었다. 크고 화려한 본관 뒤 편, 좁은 골목길 건너 다소 작은 규모의 상가 건물이었다. 일반 임산부들과 마주치지 않게끔 하는 배려일까. 본관에 비해 작고 조용한 병원 문을 용기를 내어 밀고 들어갔다.



일반적인 난임 검사는 첫 방문 시 초음파 내진과 피검사로 진행된다. 그렇다. 오늘은 생리 이틀째, 가장 양이 많은 날이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질초음파를 한다. 생리 중 내진이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놀랍고 두려운 과정을 거쳐야 임신이 될까.. 진료의자에 몸을 누인 채,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의사 선생님은 젊고 예쁘고 친절했지만, 하혈 중 초음파라는 엄청난 경험에 이미 나의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졌다. 젊고 예쁘고 친절한 난임과 선생님은 오늘 온 김에 검사와 함께 과배란 임신 시도를 병행해보자고 하셨다. 원칙적으로 난자는 한 달에 하나 배란되지만 약을 복용하여 성숙 난자의 개수를 늘려 임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한다. 약은 클로미펜을 처방받았다. 진료실을 나와 호르몬 검사를 위한 채혈 후, 일주일 뒤 나팔관 조영술 예약을 하고, 의사 선생님이 권해주는대로 영양제도 하나 샀다.


과배란 약에 영양제에 나팔관 조영술 시술 전 미리 복용하라던 진통제까지, 어느새 가방 가득 약을 들고 병원을 나서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무겁던지. 결국 이렇게 병원까지 오게 되었구나.. 싶으면서도, 병원의 도움을 받았으니 잘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뒤섞여 이루 말할 수 없이 심란해졌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클 것임을 알기에.




어쨌든 이제 그토록 망설이던 한걸음을 떼었다. 이 걸음에 반년이 걸렸다. 다음은 어떻게 될까, 어디로 나를 인도할까.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열심히 걸어가보자.



Puebla, Mexico(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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