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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Aug 11. 2020

임신적 시선으로 보는 생리주기에 대하여

2018년 9월 30일의 일기


**임신 주수계산에 오류가 있어 글 내용 수정했습니다**


또, 생리가 시작됐다.



목요일부터 피가 비치더니 금요일이 되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람의 몸이 참 신기한 게 배란일 이후 14일이면 정확히 생리가 시작된다. 나같이 주기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생리 후 배란일까지의 기간은 다를지언정 배란 후 14일 뒤 생리 시작은 정확하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임신 시작 날짜는 난자와 정자의 수정이 이루어진 날이 아닌 마지막 생리 시작일부터라는 것이다. 여자의 몸은 생리 시작일을 기점으로 매달 임신을 대비하고 있는 셈이라 생리 후 배란일까지의 평균 2주 정도의 시간도 임신 기간에 포함시킨다.


그러니까 임신 2주 0일(=배란일)쯤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진 뒤 대략 일주일 안, 3주 0일쯤(=생리 1주 전)에 착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진짜 임신이 되고, 실패하면 임신을 대비해 두꺼워졌던 자궁 내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생리가 된다. 따라서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뜰 정도의 임신 호르몬이 분비되려면 착상이 완료된 이후인 최소(의 최소) 임신 3주차 중반 정도는 되어야 한다.


참고로 생리예정일은 임신 4주 0일이다. 생리가 늦어지는 것으로 임신임을 알게 된다면 보통 4주차에서 5주 정도 될 것이다. 그러니 영화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고 나 5주래, 라고 할 때, 행여나 한 달 동안 뭐하다 5주나 되어서야 안거야, 라고 혀를 차는 사람은 없...겠지...?




임신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내게 생리란 귀찮기만 한 월례행사였다. 아랫배가 불룩 나온다던지, 가슴이 단단해지는 생리전증후군이 있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쓰였던 적도 없었다. 단지 이를 악물어야 하는 생리통과 찝찝함을 견뎌야 하는 기간일 뿐이었다. 그러다 한차례 유산을 하고 임신에 대한 간절함이 생긴 이후로는 아주 미세한 몸의 변화까지도 예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생리주기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은 체온의 변화였다. 어느 날 감기도 아닌데 갑자기 체온이 평소보다 살짝 올라간 것이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증상이었다. 이상하다 하면서 이마도 짚어보고, 혹시 임신 증상이 아닐까 슬쩍 기대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초체온법이란?


여성은 배란이 이루어진 후에 호르몬의 영향으로 기초체온이 살짝, 0.5도에서 1도 정도 높아진다고 한다. 이걸로 이번 달 배란이 무사히 이루어졌는지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기초체온을 재보는 것이다. 사람마다 평균체온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측정한 값이 고온인지 저온인지 판단하기 위해선 매일 꾸준히, 최소 두 달 이상 재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배란일 이후 상승된 체온이 생리예정일을 지난 후에도 계속 고온으로 유지된다면 임신을 기대해볼 수 있다. 임신이 아니라면 예정일 즈음에 체온이 급감하고 생리가 시작된다.

생리 시작 후 떨어지는 체온


그러니까 이번 달만 특별히 체온이 올랐던 게 아니라, 2차 성징 이후로 주기에 맞추어 매달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러다 임신을 기대하며 몸의 반응과 증상에 신경 쓰기 시작하니 그 작은 차이를, 0.5도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얼마나 예민해졌는지를 깨닫게 된 놀라운 사건이었다. 좋게 말하면 어쩐지 나의 몸을 더 잘 알게 되고, 전보다 좀 친해진 것(?) 같다. 나쁘게 말하면 어지간히 오버 떨고 있구나 싶고.



기초 체온을 잴 때에는 동일한 조건으로 꾸준히 재는 것이 중요하다.

1. 아침에 눈 뜨자마자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2. 구강체온계를 사용하여

3. 매일 측정하고 기록한다.

혀 밑에 넣는다

참고로 구강체온계는 체온 측정이 엄청 오래 걸린다. 거의 수은온도계 수준으로 천천—히 올라가서 솔직히 갖다 대기만 하면 결과가 삑 나오는 요즘 체온계 놔두고 왜 극강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구강체온계를 써서 아침마다 지각의 공포에 시달리게 하는가! 하는 불만이 생기기도 하지만, 사실 이유가 있다.


생리주기에 따른 체온의 변화는 0.5도 내외다. 워낙 편차가 작아서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매일 동일한 조건을 설정해야 하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구강 내 체온은 신체 밖으로 드러난 부위보다 외부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기 때문에 이 곳으로 측정하는 것을 권한다. 귓구멍도 신체의 안쪽이라고 볼 수 있으나 기상 직후엔 베개를 베고 잔 쪽과 아닌 쪽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귀체온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측정 시마다 편차가 좀 있는 편이다. 구강이 싫다면 비슷한 곳으론 항문이 있겠으나 항문보단 구강이 간편하지 않은가.....



여하튼 이렇게 신경써서 측정을 한다 해도 사실 체온의 변화가 이론처럼 딱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배란 여부 확인은 초음파나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하는 게 더 낫고, 임신 여부도 당연히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는 게 낫다. 기초체온법은 나의 배란 주기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참고자료 정도로만 생각해야 한다.



증상 놀이에 속지 말자

0.5도의 변화를 감지해내는 초민감해진 감각 때문에 주의할 점도 있다. 배란일이 지나면 임신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져 입덧을 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거나 어지러움, 피곤함 같이 임신과 비슷한 증상들이 느껴지면서, 혹시 이번 달엔..?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것이 임신 증상이라 빠른 사람은 3주차부터 느끼기도 한다지만, 그 시기에 뭔가가 느껴진다면 그건 사실 심리적인 부분이거나, 생리전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설사 임신이 맞다고 해도 배란일에서 생리 예정일 사이의 기간엔 아직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하기 전이거나 직후로, 임신 증상을 유발하는 임신 호르몬이 아직 충분히 분비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니 그 기간 동안 느껴지는 몸의 변화는, 임신이 맞던 아니던간에 임신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잘 알고 싶어서, 그래서 감정낭비 하지 않으려고 공부도 참 열심히 했다. 알면서도,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나는 생리가 오기 전까지, 왜 이렇게 쓸데없이 예민해지고 기대가 되는 걸까..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데, 놓는 법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누가 과외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아이를 잘 키울 자신도 없으면서.

제일 두려운 것은 내가 아이를 미루고 싶지 않은 인생의 숙제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나는 진정 이 것을 원하는가? 사실 안 해도 그만이다. 아이가 없는 삶의 장점은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니.


아이를 원한다는 딱 부러진 확신도,

내려놓기 위한 단념도, 나에겐 어렵기만 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결심으로 아이를 가졌을까.


서울(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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