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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Sep 02. 2020

유산은 희망이 있다는 증거예요

2019년 2월 12일의 일기


지난달, 첫 과배란 실패 후 전원을 결심했다.




병원에 올 때마다 자꾸 유산했던 일이 떠올라 될 일도 안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같은 좀 더 적극적인 시술을 진행하게 된다면 난임 환자만 보는 좀 더 전문적인 병원에서 진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결정하게 된 마리아 병원— 여기는 첫 진료가 무려 아침 7시 30분(!)부터 시작이다. 난임진료는 매달 주기에 맞춰 최소 2회 이상 꾸준히 내원해야 하는데 아까운 반차를 쓸 필요 없이 출근 전에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회사원에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지점도 여러 곳이라 직장과 집의 위치를 고려해 가장 편한 곳으로 고를 수 있었다.




다낭성이란 이야기, 들으셨나요?


오늘 첫 방문 한 마리아병원에서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마리아 홈페이지에서 고민고민하다 관심법(?)으로 지정한 젊은 여자 선생님이신데 차분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셔서 첫 느낌이 좋았다.


두번째이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생리 중 초음파를 견디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질문에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다낭성? 난포가 많이 쌓여있다는 게 다낭성을 뜻하는 걸까? 그렇지만 당신은 다낭성입니다, 하는 말을 병원에서 직접적으로 들은 기억은 없었다.


—초음파상으로 확실히 다낭성이세요.


선생님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씀하셨다. 나의 오른쪽 난소엔 열다섯 개, 왼쪽엔 스무개가 넘는 난포방울이 배란되지 못한 채 맺혀 있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구나.




여러 난임 경험담을 통해 수도 없이 들어본 질환.

지난 난임검사에서 amh수치가 높게 나왔던 것이나 불규칙한 생리 등의 증상이 나와 비슷해서 어렴풋이 나도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짐작한 것과 이렇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응 너 다낭성 땅땅, 하는 진단을 받는 것은 무게감이 달랐다. 다낭성”끼”가 있는 정도겠거니 했다가 솔직히 좀 충격먹었다. 정녕 내 문제였던 걸까..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난소에 많은 작은 낭종이 생겨 커진 난소와 여러 가지 특별한 증상이 존재하는 증후군입니다. 가임기 여성에서 5-10%의 유병률을 보이는 흔한 질환입니다.

- 배란 장애 때문에 불임 및 희발월경, 무월경(50%), 생리 불순 혹은 과다 월경 소견(30%)
  : 불규칙한 생리 지속 시 자궁내막증식증이나 자궁내막암이 생길 수 있습니다.

- 체중 증가 및 허리둘레 증가.

- 남성 호르몬 증가로 말미암아 과다한 얼굴 체모
   : 팔이나 다리, 배꼽 주위, 등에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외, 여드름, 높은 유산율, 인슐린 저항성, 내당능 장애, 고혈압, 고지혈증, 허혈성 심질환, 대사증후군 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출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https://www.cmcseoul.or.kr/healthcare/bbs/view.do?idx=122&curPage=3&keyword=&searchFields=&type=A)

(내가 자꾸 살찌는 것도 다낭성 때문인 것인가!!??)




비록 유산이 되었지만 작년에 한 번 자연임신이 되었던 것을 선생님은 희망적으로 보셨다. 자연임신이 되는 몸(?)이란 증거이기 때문에 배란유도제 복용을 통해 몇 달 더 자연임신을 시도해봐도 되겠다고. 당시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속상하기만 했는데, 난임 치료에선 유산된 것을 그저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니 아이러니하다. 의도하신 건 아니겠지만 유산에 대해 들은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 좀 더 희망을 가져보자.



시술에 대해 아직 확고한 결심이 서지 못한 나에게 자연임신을 좀 더 해보자는 건 반가운 말씀이긴 했지만 지난달의 경험이 떠올라 걱정이 되었다. 내 난포는 클로미펜 복용 후에도 자라지 않아 페마라와 주사까지 처방받아 힘들게 배란 유도를 했었다. 그럼에도 크기가 많이 크지 못했고 자궁내막도 충분히 자라지 못했었는데 같은 시도를 다시 반복하는 건 무의미한 일은 아닐까.


나의 혹독한 첫 난임치료 체험기(혹은 하소연)를 들으신 선생님은 다낭성의 배란이 잘 안되는 호르몬은 당뇨를 일으키는 호르몬과 같아서 식이요법을 같이 해야 약이 잘 받는 몸으로 변한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다낭성의 경우, 약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밀가루와 설탕을 끊고 운동도 해야 배란이 잘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오늘 나와 초면인 선생님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아실리 없는데도 뭔가 내 일상을 들킨 듯한 느낌이 들어 뜨끔했다. 선생님, 뭐가 보이시는 건 아니죠....???..... 흠흠....





지난달 내막이 6mm가 채 되지 못했기 때문에 배란유도제는 페마라로 처방받았다. 클로미펜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내막이 얇아지는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2알씩 5일, 그리고 배란에 도움이 된다는 약한 레벨의 당뇨약 메토파지는 하루에 한 알씩 10일간 먹는 걸로.


남편도 마찬가지로 노력해야 한다. 금주금연 기본이고, 고환에 압력과 고온을 피하고, 샤워할 때에도 그 부분은 찬물로 씻어야 한다고. 그리고 남성영양제도 추천해 주셨다.

덧붙여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내가 챙겨 먹어야 하는 영양제는,

이노시톨 4g/ 아르기닌 4g / 엽산 400이상/ 비타민d 2000이상—


잘 챙겨 먹어보자.


St.Paul de Venc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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