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3일의 일기
꿈에 수선화가 나왔다.
숲 속을 산책하는데 길가에 예쁜 꽃이 피어 있어 곁에 앉아 구경을 했다. 색깔은 청초한 보랏빛이었다. 곱다고 어루만지다가 잠에서 깼다. 그 꽃이 수선화라는 것은 이 꽃 저 꽃 검색해보고서야 알았다. 실제로 수선화는 보라색이 없어서 찾는데 더 오래 걸렸다.
작년 임신 때에도 꽃 꿈을 꾸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호숫가에서 신랑과 마주 앉아 나룻배를 타고 있었는데 신랑이 툭 수국 꽃다발을 내밀었다. 현실에선 상상하기 힘든 로맨틱한 상황에 기쁘게 받아줄 만도 한데, 오글거리기도 하고 과한 포장의 파란색 꽃다발이 너무 흔하고 촌스러워 보여서 받기를 주저하며 헛웃음을 짓다가 잠에서 깼다. 아니 그래도 성의이고 꽃인데 그냥 좀 받지, 그 와중에 촌스럽다고 머뭇거리다니!!
그 탓이라고 생각하진 않(으려 노력하)지만 암튼 유산이 되고서 그 꿈 생각이 많이 났다. 사실 받으려고 했다. 오글거리고 촌스러웠지만 고맙고 기분 좋았다. 꿈이 조금만 길어졌다면 받고 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직전, 내가 망설이던 그 짧은 순간에 꿈에서 깨어나 버렸다. 그 후로 꿈에서 꽃이 나오면 어쩐지 신경이 쓰인다.
배란 준비가 너무 잘되어 있네요!
긴장된 마음으로 방문한 병원. 토요일이라 사람이 꽤 있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초음파부터 봤는데 선생님이 밝은 목소리로 배란 준비가 잘되어 있다고 하셨다.
일단 내막이 지난달에 비해 두껍게 잘 자라서 0.91cm 정도였고 가장 착상이 잘된다는 세 겹의 선, 트리플 라인도 잘 보인다고 했다. 난포도 양쪽에 한 알씩 크게 잘 자라 있었다. 지난달에도 동일하게 페마라를 먹었는데(심지어 3알로.. 이번 달은 2알) 식이요법과 운동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같이 복용한 당뇨약 메토파지 덕분인 걸까. 선생님이 페마라에 대한 반응이 좋으니 앞으로도 몇 달간 자임시도를 더 해봐도 좋겠다고 하셨다.
임신된 것도 아닌데 이 이야기만으로도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혼자 배실배실 웃으며 진료실을 나와서 남들이 보면 무슨 임신 성공한 사람인 줄 알았을 거다.
겨우 배란 준비가 잘 된 것으로 들뜨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기쁘다. 이번 달엔 그 좋아하던 과자도 끊고 야채 위주로 먹고 운동도 조금씩 하고, 내 나름대로는 엄청 노력했었다(원래는 먹는 거 좋아하고 평소엔 숨만 쉬는 타입ㅇㅇ)
사람들이 그렇게 먹을 것 조심하고 운동하며 노력하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땐 사실 한 귀로 흘렸었다. 괜히 여자들 죄책감 들게 만드는 말 같아서 듣기 싫기도 했다. 근데 여기서 선생님이 당뇨약(!)까지 처방하면서 약 복용과 같이 평소 식이습관도 신경 썼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는 정신 차리고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괜히 고생만 하는 거 아닌가, 했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니 뭔가 노력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정말 너무 기분이 좋다. 결과는 하늘에 달렸지만, 이번엔 잘 됐으면 좋겠다.
수선화 구근을 샀다.
꿈에 나왔던 수선화— 곧 나에게 와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