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비 Sep 22. 2020

임신 불합격

2019년 3월 8일


이번 달도 시험에 떨어졌다.



왜 떨어졌는지, 무슨 과목을 몇 개 틀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합격여부만 간단히 통보받을 뿐. 오답노트를 만들고 싶어도 뭐가 틀렸는지를 모르니 그럴 수가 없다. 시험에 나올지도, 안 나올지도 모르는 모든 범위를 공부하는 수밖에. 선생님을 바꾸고, 매달 하나씩 새로운 과목을 추가해보지만, 결과는 늘 좋지 않다.


이번 달은 그래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 난이도에서도 붙지 못한다면 난 아예 가망이 없는 게 아닐까. 나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 둘, 합격증을 손에 넣었다. 어떤 사람은 한 번에 덜컥 붙어서 본인이 더 얼떨떨해했다. 너무나 뜻밖이라 곤란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래도 기쁘겠지. 합격은 좋은 일이니까.


아무도 나에게 합격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먹고사는 일과 관계도 없고 그냥 내 만족으로 치르는 매달의 시험이다. 사실 내 합격을 바라는 건 오로지 나 혼자뿐인 것 같다. 다들 그저 웃으며 언젠가는 붙겠지, 한다. 맞아, 언젠가는 붙겠지. 나도 내가 영원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날 힘들게 하는 건 지금을 견디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여기, 시험에 떨어진 불합격의 세계에 속해 있으니까. 오늘 하루, 지금 내가 지나는 일분일초가 불합격의 세상이고, 나는 그 세상을 멈추지 않고 건너야 하니까. 저 너머에 희망이 있다고 해서 지금의 불행이 없는 것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얼마나 더 오래, 막연한 희망을 기대하며 이 길을 따라가야 할까. 차라리 포기하고 싶지만 막상 그럴 용기도 없다.



문득문득 슬픔, 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런 걸로 슬퍼하지 않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자꾸만 도망가려는 멘탈을 붙잡고.



다시 공부 시작.



Melbourne, 2011
매거진의 이전글 다낭성에겐 임신만큼 기쁜 소식 — 정상 배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