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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Sep 25. 2020

실패, 그리고 마음 다독이기

2019년 3월 9일의 일기


토요일이다.




아침 8시쯤 일어나 화분들 정리하고, 물 주고, 행운목 분갈이하고, 잎사귀 닦아주고. 아, 그리고 응애 입은 다육이도 약물에 담가 헹구고 깨끗이 씻겼다. 그러다 보니 오전 시간이 훅 지나갔다. 요즘 나에게 가장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는 식물들. 마음 편해지는 초록색을 보고 있으면, 그 조용하지만 강한 생명력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마음과 다르게 맘까페에 자꾸 들어가게 된다. 들어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결국 한번씩 들어간다. 온갖 잡스러운 검색을 하다 테스터기 방에 들어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다. 글을 보면서 제일 부러운 케이스는 임신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다. “생리 예정일이 며칠 지나도 소식이 없길래 혹시나하고 테스터기 해보니 두줄이네요! 이제 저는 뭘 해야 하죠? 주수는 어떻게 계산하나요?”라고 묻는다면 그건 별다른 노력 없이 아이를 얻은 사람들이란 뜻이고, 곧 자신의 자존감을 온전히 지킨 채로 임신이 되었다는 말이니까.

솔직히 나도 처음엔 그런 상태로 임신을 했고, 자신만만했다. 임신 별거 아니네 하면서. 그러다 얼마 안돼 유산이 되고 그 후로 반년 넘게 실패하면서 많은걸 깨달았다. 실패했기에 알기 위해 공부했고 수많은 케이스를 검색해보며 나와 비교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예전보다 많은 지식을 갖게 됐고 쓸데없다 생각했던 영양제도 네 개, 다섯 개씩 챙겨 먹으며 주기에 맞춰 병원을 다니고 있다. 예전의 내가 봤다면 진짜 유난 떤다고 하겠지.

그 어긋난 지점이 참 괴롭다. 집착하지 않고 쿨하게 살고 싶은데 뭐든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에겐 단 하나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아서 노력 없이도 가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내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는 사실이 날 자꾸만 작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런 인간 본능의 영역까지도. 마치 인생이 나에게 너의 행복은 절대 공짜일 수없다고 끊임없이 경고하는 듯하다. 


오후엔 양주 화훼단지에 다녀왔다.



들어가자마자 펼쳐진 싱싱한 다육이들이 눈을 압도했다. 얼마 전부터 점찍어 두었던 마오리 소포라 나무도 구입하고, 솔매화가 한가득 잔잔히 피어있는 화분은 꽃화초 좋아하시는 어머님 드리려고 하나 샀다. 값싸고 귀여운 다육이들도 고심해서 몇 개 골랐다.


기분이 많이 전환되었다. 임신이 되지 않아 할 수 있는 여러 계획을 세워본다. 대만에 갈까? 아님 제주도? 아님 자동차 여행? 아니란 걸 확신하고 나면 그래도 차라리 마음이 한결 가볍다. 포기할 수 있으니까. 확실하지 않을 때가 제일 감정적으로 힘이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기대와 실망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느낌. 안 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무렵, 그래서 내 마음도 조금은 더 편안해질 무렵, 비록 그것이 포기의 다른 표현일지라도, 나에게 오지 않을까. 아직 이렇게 기대가 되는 걸 보면 아마 더 많이 기다려야 하나 보다.




Aix-en-Provenc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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