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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Sep 28. 2020

손흥민을 보다!?

2019년 3월 15일의 일기


남산 그랜드 하얏트에 왔다.


혹시나 해서 대만 여행도 포기했는데 실패한 게 너무 화가 나 홧김에(...) 예약한 호텔이니 따지고 보면 내가 아닌 내 호르몬이 예약한 셈이다. 사회초년생 시절, 남산타워 야경에 반해 이 호텔 근처 작은 까페에 들른 적은 종종 있었지만 호텔 숙박은 처음이었다.


-야경이 예쁜 남산타워, 여기서 실컷 보고 가자.

-남산 공원도 좋은데 산책할 시간이 될까?

개미씨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주차 후 로비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정문에 카메라와 함께 높이가 꽤 높은 벤츠 밴이 정차되어 있어서 차 멋있네, 누구 유명한 사람 결혼식이 있나? 하고 지나치려는 순간, 사람들 사이에 서있는 사람은... 신랑신부가 아닌 손흥민..??!!

대박!


호텔에 들어선 손선수는 로비에서 일행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고, 우리는 체크인을 하면서도 계속 흘끔거리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실제로 본 그는 tv에서 보던 것보다 크고 건장해 보였다. 그리고 멋있었다! 배정받은 방에 들어선 후까지도 우리는 손흥민 선수를 본 걸로 계속 흥분상태였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선수와 오늘, 여기서, 우연히 마주치다니!




들뜬 우리의 기분과는 달리 창밖에선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고 경리단길 쪽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고 케냐 대사관 옆 까페에서 커피도 한 잔 했다. 떨어지는 빗발에 거리는 한산하고 남산타워도 흐릿했지만 우연히 마주친 소니때문에 로또라도 맞은 듯 우리의 기분은 좋기만 했다. 비 오는 거리를 쏘다니며 나는 그가 얼마나 스타일이 좋고 얼굴이 작은지를, 개미씨는 그가 얼마나 훌륭한 플레이어인지를 쉼없이 떠들었다.

비가 와도 좋았다ㅋ



우리의 행운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조식을 먹을 때에도, 체크아웃을 할 때에도 손흥민 선수와 다시 마주칠 수 있었다.


알고보니 당시 tvn에서 “손세이셔널”을 촬영 중이었다



조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개미씨가 사진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영국에선 워낙 팬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한 선수라 약간 실망했지만, 아침 먹으려 접시 들고 있는 시람에게 요청한 우리도 사실 노매너였고, 심지어 거절도 너무 예의 바르게 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서로 식사 맛있게 하시라는 인사만 주고받았다. 우린 전날에 이어 두 번이나 마주친 것만으로도 그저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개미씨와 밥 먹는 내내 손선수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개미씨는 열렬한 축구팬은 아니지만 유독 손흥민 선수 경기가 있으면 새벽에도 축구 중계를 보곤 한다. 골이라도 넣은 날엔 다음날까지 유튜브에서 손흥민 활약 하이라이트 영상도 꼭 챙겨보고. 그에 반해 나는 축구의 ㅊ도 모르고 개미씨가 계속 유튜브 찾아보고 있으면 그만 좀 보라고 타박하기도 했었지만, 막상 손흥민을 실제로 보니 이건 그야말로 엄청나게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스포츠 스타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하달까.


막상 호텔은 룸 업그레이드를 받았음에도 무슨 공사 중인지 아침 내내 드릴 소리로 시끄러워서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개미씨와 농담으로 우리 돈 내고 손흥민 보러 왔나 보다 하며 기분 좋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돈 아깝지 않았다고. 그래, 세상엔 임신 말고도 즐거운 일이 너무 많다.



삶은 결코 나에게 실망만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번 달을 임신에 실패한 달이라 할 것인가, 아니면 손흥민 선수를 마주친 행운의 달이라 할 것인가. 어떤 기억을 갖고 갈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예상하지 못했듯, 서프라이즈 같은 즐거움도 아마 내 삶 속에 더 많이, 곳곳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고 (멋있는 손선수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며)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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