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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Sep 17. 2020

쓰는 것이 힘들어서 쓰는 글

안쓰면 되잖아...?

며칠 전 꿈에서 아이를 잃었다.



앞뒤 맥락은 알 수 없으나 큰 병원 건물 바로 밖에 내가 서 있었고, 다른 누군가에게서 아이가 결국 잘못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마도 나는 차마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무너져 말 그대로 엉엉 우는데 거의 통곡에 가까웠다. 주변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야말로 거대한 슬픔만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길바닥에서 한참을 울다 잠에서 깨어나니 율이가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 이딴 꿈이 다 있나.

잘 때가 제일 예쁘다는 말은 진리ㅇㅇ




요즘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예전 일기를 정리하고 있으면, 그때의 감정이 다시 올라올 때가 있다. 나는 쓰면서 해소하는 타입의 사람이라 글에 나의 감정을 꽉꽉 채우는 편이고(싸이월드감성ㅋ), 그래서 나의 예전 글을 다시 읽으면 그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재현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였을까, 이런 꿈을 꾼 이유가.. 더구나 꿈속에서 엉엉 우는 와중에도 와, 이거 유산한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데? 하면서 나의 슬픔을 과거와 저울질;;하고 있었던 걸 보면, 확실히 브런치 탓이다.

맛있겠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그래도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아기를 만날 수 있었던 케이스이다. 시험관까지 가지도 않았다. 유산을 두 번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오랜 기간, 여러 번의 시술로 힘들어하는 난임부부들이 많이 있고 그분들이 보시기에 나의 이야기는 애송이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지금의 내가 봐도 그렇다.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 말해주고 싶다. 좀 더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그럼 금방 올 거라고... 웃기게도 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다. 결국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니 어느 작가의 말대로 삶이란 역시 농담인가 보다.



암튼 그래서인지 글을 올리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미 존재하는 글을 다듬어 올리는 것뿐인데, 서랍에 넣어두고 며칠씩, 일주일씩 머뭇거리게 된다. 그때의 과도한(...)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 힘들고, 공개된 장소에 펼쳐 놓는 일은 더 힘이 든다. 마치 나 혼자 옷을 안 입고 거리에 나앉은 느낌이랄까. 발행 버튼을 누를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옆길로 새서 다른 걸 끄적여 보기로 했다. 이 공간 속 나를 희석시켜 조금 더 나아갈, 조금 더 뻔뻔해질 용기를 얻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또 체력적으로도 부치는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꾸준히 쓰시는 작가님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쓰고 있는, 쓰는 것이 힘들다고 쓰면서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나도 참 이상한 사람이다.



Aix-en-Provenc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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