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비 Jan 08. 2021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정인아 미안해

잠이 오지 않는 밤,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두 번째 진정서를 보내고 글을 쓴다. 짧고 간결해야 한다는 진정서엔 이 무거운 마음을 10분의 1도, 아니 100분의 1도 담을 수 없었다.


어린이집 cctv 속, 태어난 지 겨우 1년 반도 채 되지 못한 아기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 놓은 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의 상태에 빠져 있는 모습이라니.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그 작은 아기가 감내했어야 하는 고통이 너무나 커서, 나에겐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화가 난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더 괴로운 것은 그 분노 화살 중 일부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저녁, 관련기사를 같이 보는데 남편이 말했다.


"나, 정인이에게 왜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나는 그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러니까 말야. 나도 이게 꼭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아마 모두들 비슷하게 느끼고 있으니 우리가 이토록 크게, 아프게, 정인아 미안해, 를 외치고 있는 것이겠지.


우리는 세상의 정인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정인이 주변만 봐도 그렇다. 학대를 눈치채고 신고를 세 번이나 했지만 단 한 번도 인정이 되지 않았고, 양부모와 분리되지 못했다. 어찌저찌 아동학대가 인정이 된다 하더라도 보통 1년 안에는 부모에게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고 한다. 사회가 그렇게 구렁텅이에서 꺼내온 아이들을 받아줄 충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해당 부모에게 온갖 욕설을 들어야 했던 소아과 의사나, 억지로 아동을 분리했다가 부모에게 고소당한 경찰에 대한 이야기도 들린다. 모두 다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사회는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아이들을 받아줄 여력이 없다. 아이들은 온전히 가정에, 개인들에게 내맡겨진 존재들이다. 그러니까 어떤 개인이 자신의 아이에게 제대로 된 양육의 책임을 수행하지 못할 때, 그것을 가족이 아닌 이가 바로잡아줄 수 있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내가 가장 괴롭고 화가 나는 부분이.


내가 정인이의 어린이집 교사였다 하더라도,

내가 정인이의 소아과 의사였다 하더라도,

내가 정인이의 옆집에 사는 이웃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목숨만 살리는 것만이 그 아이를 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천만의 아니 만만의 다행으로 정인이가 살 수 있었다한들, 여전히 그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그 아이의 삶은 또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했을지.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을 구해줄 수가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해 터질 것 같은 속을 부여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진정서를 써서 보내는 일. 겨우, 겨우 그 한 장의 종이가 높디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 우리에게 아주 작은 티끌만큼이라도 키를 보태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세상 모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하다 보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같이 분노하고 같이 아파하면서, 거기에 조금의 행동을 보태준다면.





정인이 진정서 작성하는 법


출처: https://cafe.naver.com/imsanbu/53749070


작가의 이전글 쓰는 것이 힘들어서 쓰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