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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Oct 17. 2020

작아진 아기집, 그리고 두 번째 유산

2019년 5월 18일의 일기

어제, 집 근처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아기 위치 때문에 초음파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마리아 선생님을 신뢰하지만, 혹시, 만에 하나, 아기집 위치에 대해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접수하고 대기하는 중에 너무 긴장이 돼서 뛰쳐나가고 싶은 걸 겨우 참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뛰쳐나갈걸 그랬다....


이 동네에서는 꽤 큰 규모의 산부인과—

병원엔 간호사도, 의사도, 또 배가 부른 임산부도 많았다. 병원 특성상 (티나는)임산부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난임병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고, 그것이 나를 더 위축하게, 그리고 긴장되게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산부인과는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나는 왜 평범한 저들처럼 될 수 없는가를 끊임없이 묻게 하는 곳. 이번엔 어떨까...? 당장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어쩐지 저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교차되었다.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은 세게 뛰고, 손바닥에선 땀이 맺히기 시작할 무렵, 나의 이름이 불렸다.




초음파상 아기집 크기는 4mm.

분명 지난번 1cm 가까이 자라 있던 아기집의 크기가 확 줄어 있었다. 위치를 보려고 왔는데 크기부터 이상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아직 피도 나지 않는데, 배가 아픈 것도 아닌데, 유산이 진행 중인 걸까? 이틀 만에 아기집 크기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조금의 하혈도 없이?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나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아기집의 모습이 담긴 초음파 사진 한 장을 뽑아 건네주셨다.

-무리하지 마시고 몸조리 잘하세요!

친절하신 선생님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진을 보지도 않고 가방에 넣으며 도망치듯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귀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몰라 채혈한 피검 수치가 나왔다고. 3,353. 지난주보다 떨어져 있다.

유산 확정.




오늘 아침, 마리아 선생님께 여기까지 말씀드리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혼났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병원 전화를 받고 개미씨에게 톡을 보내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어제의 일들이 나의 입을 통해 발화되는 순간, 단어 하나하나가 눈물로 변해 내 몸속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선 얼른 티슈를 한 장 뽑아주시며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시고, 우선 초음파부터 보자고 하셨다. 기대할 것도 없이 아기집은 역시나 크기도 작아지고 좀 더 어른어른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채혈해보고 다음주에 수술여부 결정하자 하시는데, 초음파보다도 피검수치가 떨어졌으니 유산은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지체하지 말고 바로 수술했으면 했는데 선생님은 여기에서 다시 피검 결과보고 다음주쯤에, 그래도 6주는 지나서 결정했으면 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아기집 유지가 안되는 것에 대해서도 습관성유산 검사를 해보자고.





이번에 소니가 나에게 온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작년에 처음 유산이 되었을 땐 그저 남들보다 조금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8개월 간 시도한 자임이 실패했을 때에는 타이밍이 약간씩 어긋났거나 직진운동성이 떨어지는 정자들이 난자와 잘 만나지 못한 게 아닐까 추측했다. 더구나 이번에 정확한 시기에 정자를 확실히 주입하는 인공수정을 하고선 바로 임신이 되는 걸 보곤, 그래 역시 그동안 나는 운이 없었던 거야, 생각했다.


그러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난황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아기집을 보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 4주차와 5주차 피검수치가 평균보다도 좋게 나왔음에도 유지가 되지 못하는 데에는 나에게 뭔가 정상적 임신을 방해하는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오후에 병원에서 피검수치 2천대라고 전화가 왔다. 어제 채혈한 것보다 1,000이상 내려갔다. 아주 잘 떨어지고 있다. 마치 서둘러 임신 전의 몸으로 돌아가려는 듯이.


하루빨리 이 임심을 종결하고 싶은 마음과 비록 모습도 제대로 만들어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소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어렵게 와주었는데 편안히 있을 공간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는 게 다 내 잘못인 것만 같고. 다음 주에 다시 보자는 선생님에게 지체하지 말고 당장 수술할 순 없냐고 묻던 나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웠다.


시술 후 9일째 되던 날,

옅은 두 줄을 보고 개미씨 목을 끌어안고 행복해했던 기억이 제일 가슴 아프다. 씻고 나오던 개미씨가 옷도 제대로 못 입고 그동안 맘고생 많았어, 축하해, 하고 내 등을 토닥이던 그 날. 많이 행복했던 날. 이제 또 그런 날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겠지. 아주 많이,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서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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