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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Oct 13. 2020

아가야, 왜 거기에 있니.

2019년 5월 11일 & 15일의 일기


첫 초음파 보는 날— 기대를 많이 하고 갔다. 



테스트기 진하기도 진해진 지 오래고 왠지 잘 보여야 할 것만 같았다. 같은 이유로 만약 오늘 잘 안 보이면 큰일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의자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기다렸다.


그러나 바로 보이지는 않았는지 여기저기 뒤적뒤적하시는 선생님. 말씀이 없으시다. 한참을 보시다,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 보여주시며 이쪽에 아기집으로 추정되는 것이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 너무 조그마해서 딱 맞다고 확신하긴 이른 것 같다 하셨다. 어쩌면 물고임일 수 있다고.


그리고 위치마저 자궁 중앙이 아닌, 초음파 렌즈 각도를 틀어야만 보이는 오른쪽 구석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이게 다시 중앙 쪽으로 자리를 잘 잡는지 계속해서 봐야 한다고, 다음 주에 한번 더 오라신다. 보통은 중앙으로 와서 다시 자리를 잡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한 경우,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진료 후 간호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피검 수치는 3,670. 보통 1,500 이상이면 아기집이 보이는 수치라는데 3,670이면 그 두 배도 넘는데 아기집이 이렇게 작아도 되나? 또 아기집이 또렷하게 보여야 좋다는데 나는 흐릿흐릿한 색에 모양도 동그랗지 않았다.



하.. 기운이 쭉 빠졌다.

위치며, 크기며 하나하나 다 찜찜하고 의문스럽다. 시기에 맞게 딱딱 진행되어도 불안한 게 임신인데, 이렇게 물음표가 많이 생길수록 예후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하다. 이번엔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하나 쉬운 게 없다.







4일 뒤, 아기집 위치 때문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아기집은 여전히 오른쪽 구석에 숨어있었다. 선생님 말씀으론 위치가 지난번보다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자궁각임신.
선생님께서 이 단어를 꺼내셨다. 요즘 나도 틈만 나면 검색해보던 단어다. 자궁각임신이란 수정란이 나팔관과 가까운 자궁의 구석(자궁각)에 착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것이 자궁 안쪽으로 자라면 정상 임신이 되고, 나팔관 쪽을 향해 자라면 임신을 유지할 수 없다. 임신 초기에 자궁각임신의 판단은 애매해서 섣불리 임심을 종결시켜 버릴 수도 없고, 그러다 판단이 늦어져 자궁이 파열되는 응급상황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아기집이 잘 내려오는지 초음파를 가능한 자주 보는 수밖에 없다고. 위치에 변함이 없으면 정확한 판단과 조치를 위해 대학병원으로 전원하게 될 거라 하신다. 암담한 이야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기집이 조금씩 자라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진료 때에는 너무 작아 크기를 재어주지도 않으셨는데 오늘 아기집은 1cm에 가까웠다. 위치도 위치지만 자라지 않을까 봐, 나는 그게 더 겁이 났다. 작년 기억 때문이다. 당시 임신 확인한 지 겨우 며칠 후, 피가 비치는 바람에 다시 병원에 방문했는데 아기집이 지난 초음파 진료에 비해 많이 자라 있지 않았었다. 당시엔 잘 몰랐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것이 유산의 징조였다. 더구나 하혈도 조금씩 있었으니까.

이번엔 피가 보이지는 않는다. 화장실 갈 때마다 긴장된 마음으로 속옷을 확인하는데, 정말 조금의 출혈도 없다. 위치가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고도 내가 무너지지 않고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불안한 아기집에 우리는 소니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배아에게 이름을 붙일 만큼 상황이 아주 좋다고 볼 순 없지만, 그렇기에 더 소니라고 불러주고 싶었다. 잠깐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또렷이 느껴졌던 손선수의 그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기운을 받아 부디 너도 튼튼히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니야, 아가야,

우리가 너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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