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후, 1차 피검 날까지
인공수정 후 7일째
(당연히도)아직 아무 증상이 없다.
질정 때문인지 배가 빵빵하게 부푼 듯한 느낌뿐.
시술 전, 선생님께서 초음파를 보다 웃으시며 “쌍둥이도 괜찮으세요?”하고 물으셨다. 난포가 5-6개로 생각보다 많이 자라줬기 때문에 다태아의 가능성이 있다고, 만약 쌍둥이는 절대 안 된다고 하면 시험관 시술로 돌릴 수도 있으니 알려 달라신다.
몇이든 되기만 한다면 너무 좋죠!
신나서 대답하는 나—
아, 쌍둥이라니..!! 겁이 나면서도 설레는 단어다. 아아, 우리에게 둥이가 와준다면.... 얼마나 힘들고 또 얼마나 귀여울까! 진료의자에 누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김칫국만 한 사발 들이켰다. 이 시기가 (잘못)지나면 또 엄청나게 우울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생각하면서도 “쌍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하나든 둘이든, 설마 셋이든, 와주기만 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이리라.
인공수정 후 9일째
아침에 테스트기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번에 안 나오면 아닌 걸로 생각하자고. 배란일이 정확한 경우 사실 9일 차에는 희미하게나마 반응이 있어야 한다. 경험상 그보다 늦어진다면 수정이 되었어도 착상이 어려운, 건강하지 못한 배아일 확률이 높다.
원포 스틱에 뭔가 어른어른거리기는 하는데 분명한 선이 나오지는 않았다. 돋보기로 보고, 빛 아래서 요리조리 보는데도 선은 애매하기만 했다. 맞네 맞아 했다가, 아무래도 아닌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익숙한 실패의 기운이 올라온다.
지난달들의 기록을 보니 이 정도면 그냥 시약선이다. 이보다 더 진하게 나왔어도 임신이 아니었다. 화학적 유산조차 아니고 그냥 바로 생리가 왔다. 이쯤 되면 마음을 접어야 하는데 잘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틈나는 대로 확대해 찍은 사진을 꺼내보며 선을 그렸다. 보이는 건가? 아닌 건가?
하도 고민이 되어 오후에 테스트기 사진을 맘까페에 올려 봤다(다들 이런 마음으로 올리는구나..ㅋㅋ). 그런데 의외로 한 명만 빼고 다들 뭔가 보인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늘 이런 식으로 한 줄이 살짝 보이다 생리가 왔었다. 시약선인지, 난포 주사 때문인지 몰라도 지난 일 년간 계속 그랬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퇴근하고 마지막으로 테스트기 한 번만 더 해보자 했다. 아닌 것 확실히 확인하고 질정 끊으려고. 넣는 것도, 넣고 약효가 충분히 퍼질 때까지 꼼짝않고 누워 있는 것도 너무 불편한 데다 비급여라 어찌나 비싼지, 아니라면 더 이상 낭비하지 말고 다음 회차에 쓰려고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분명한 한 줄이었다. 그런데 뭔가 붉은 잉크가 테스트선 쪽에 어른대더니 색깔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내 눈이 이상한가? 묘하게 현실감각이 없어졌다. 이게 지금 맞는 건가? 두줄인가?? 착각이 아니고??
위에가 아침
아래가 저녁
희미하긴 해도 이렇게 선명한 두 줄은 처음이다. 아침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샤워하고 나오는 개미씨를 붙잡고, 아 어떡해, 두줄인가 봐. 아, 어떡해 ㅠㅠㅠㅠㅠㅠ 하면서 둘이 껴안고 서로 축하했다. 와 닿지 않아서인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진짜일까? 꿈이 아닐까?
인공수정 후 10일째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두 줄 본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 사실 위험한 날이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이기도 하고, 무리하지 않고 저녁만 먹고 오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취소하지 않았다.
퇴근이 조금 늦는 친구를 기다리며 얼리 테스트기를 사서 해보았다.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소변이 닿자마자 줄이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얼마 기다리지 않아 차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두줄을 보고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맞긴 맞구나. 감사합니다!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어 놓았는데 자꾸만 꺼내보고 싶은걸 참느라 혼났다. 이번엔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까? 하지만 계속 불안하긴 하다. 괜히 설레발치고 싶지 않아 친구에겐 아무말하지 않았다.
인공수정 후 14일째
드디어 1차 피검 날이다.
오늘은 피검만 받고 가면 되는데 배가 가끔 생리통처럼 너무 아픈 게 있어서 초음파까지 받고 갔다. 약간 수축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돼서. 초음파상 복수은 전혀 없고 오른쪽 난소만 6-7cm 정도로 부어있으나 다행히 문제가 될 만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난관이 꼬일 수 있으니 무거운 것은 들지 말고 뛰지도 말라고 하셨다. 엎드리는 자세도 좋지 않다고. 자주 엎드려 있었는데 조심해야겠다.
피검 결과가 두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귀가했는데, 들어가는 길에 순댓국집에서 점심 먹고 있는 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도 모르게 전화를 받는 손이 떨렸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피검 수치 결과는 187. 수치가 좋으니 일주일 뒤에 내원해서 2차 피검받고 초음파 다시 보자고 하신다. 이쯤, 그러니까 생리 예정일엔 100만 넘으면 안정권이라고 하니 수치는 나쁘지 않지만 둥이라고 보기엔 좀 낮은 수치인 것 같다. 하하,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좋으니 제발 잘 붙어서 자라주기를...!!!!
온 세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치루 투혼에도 인공수정 잘 협조해준 개미씨도 고맙고, 인공수정해주신 우리 의사 선생님도 고맙고, 늘 친절하게 예약 잡아주시는 간호사 선생님도 고맙고, 매직아이를 두줄이라고 봐준 얼굴도 모르는 까페 사람들도 고맙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삶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기분. 별 이벤트 없이 바로 임신이 되었다면 이런 감정 느낄 수 있었을까?
늘 행복에 결핍을 느끼고 자만했던 나에게 삶이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더 준비된, 좀더 나은, 좀더 넓은 가슴을 가진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이 과정의 끝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오늘의 이 감사하는 마음만은 꼭 잊지 않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