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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Aug 08. 2020

첫 임신, 유산이 되다.

2018년 5월 24일의 일기


얼마 전 나는 유산했다.


옅게 묻어나던 핑크빛 핏물이 점점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아 나는 지금 아이를 잃어가고 있구나, 의사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작 세포일 뿐이라 할지라도, 내 아이가 피가 되어 나의 품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끔찍한 기분이었다. 점점 수축되며 통증을 일으키는 아랫배를 붙잡고, 그래도 한편으로는 좀 더 버텨주기를, 배가 아픈 것이 아이가 나를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넓히는 과정이기를 바랬다.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수로는 7주, 실제 품은 것은 한 달 남짓한 시간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첫 임신이었고 처음 알게 된 때부터 매 순간순간이 놀랍고도 행복한 날들이었다. 상상도 기대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조금 더디 자랐는데, 그게 징조였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그저 엄마가 여유 부리는 성격이니 닮았으려니 생각했을 뿐이다.

전체 임신의 20%가 유산이 된다고 하니,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겠지. 실제로 내 주변에도 유산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만큼 흔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또 가지면 되지, 금방 다시 오겠지, 남일이라고 그저 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겪고 보니 유산이라는 것은 오롯이 내 몸과 마음으로 겪어야 하는 고통이었다. 이것은 너무나 개인적인 체험이어서 남편과도 나눌 수 없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나는 내 몸 안에 아이를 두었다가 내 힘으로 아이를 밀어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 복통에 어떻게도 대응하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나는 땅바닥에 앉지도 못한 채 쭈그려 앉아 힘을 줬다. 그건 본능 같은 거였다. 이 고통이 덜어지게 얼른 나에게서 떨어지라고. 그렇게 반나절을 앓다 결국 무릎으로 기어간 화장실 변기통에 핏덩이를 쏟고, 나는 차마 물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초음파에서는 고작 1cm도 되지 않았는데 이 핏덩이는 다 뭔가 하면서 멍하니 바라보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실낱같던 희망도 사라지고 고통도 조금씩 사그라든 자리에 엄청난 상실감이 들어섰다. 심장소리조차 듣지 못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같은 일을 겪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일까. 경험이 있는(또는 있다고 들은) 지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당시에 그들에게서 어떤 슬픔의 흔적이 묻어 있었던가..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은 나보다 강한 사람들이었던 걸까. 어쩌면(아마도) 내가 관심이 없었던 것이리라.


나중에 다시 아이를 갖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무뎌질 수 있는 일이라 믿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다. 극복할 수 있을지 두려울 정도로. 내 몸안에서 쑥 빠지던 핏덩이의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것을 나의 힘으로 밀어냈다는 것이 죄스럽다.

모든 것이 후회가 된다. 임신임을 알고서 걱정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유산을 너무 많이 검색한 탓은 아닌지, 내가 남들보다 물을 적게 마신 탓은 아닌지, 오래 앉아있던 탓은 아닌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은 탓은 아닌지, 배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놓았던 탓은 아닌지, 잘못된 자세로 부담을 줬던 것은 아닌지, 심지어 꿈에서 남편이 건넨 꽃다발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은 아닌지, 떠올리자면 끝도 없이 많은 나의 잘못들을 되새기게 된다. 이 유산의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는 것만 같다.


순창(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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