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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Aug 08. 2020

유산 후, 병원에 다녀오다.

2018년 5월 28일의 일기


어제 밤부터 거짓말처럼 출혈이 멈췄다.



이젠 휴지에 살짝 묻어나는 정도. 잊어버릴만 하면 찾아오던 아랫배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도 이제는 거의 없다. 초음파 상으로도 거의 많이 빠졌다고 한다. 피검사 수치만 낮게 나와주면 문제없고 임신은 다음 생리 지나간 후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고 한다.




병원에서 진료 접수하는데 간호사가 산모수첩 가져오셨냐고 물었다. 지난번 유산한 날 방문 했을 때도 똑같은 질문을 받아서 유산된 것 같아요, 라고 겨우 대답했었다. 그런데 오늘 또 내게서 산모수첩을 찾는다. 받아본 적도 없는데. 아뇨, 저 유산했어요, 라고 말하니 간호사가 깜짝 놀란다. 간호사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환자분이 유산하셨다는데요,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아서....’ 우왕좌왕하는 간호사들이 다시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기다렸다. 한 것도 없이 고단하다고 느꼈다.


대기실 의지에 앉아 배나온 임산부들이 다이어리처럼 생긴 수첩을 내미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 생각되었다. 저렇게 편안하게 임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니 대단하고 부럽다고. 나의 의사는 처음 진료때부터 어느정도 예감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 임신이 어쩌면 잘 안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그러니까 수첩도 주지 않았던 거겠지. 수첩, 수첩! 참나, 그깟 수첩이 뭐라고.



의사는 자궁에 남아있는게 별로 없어 다행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마치 애초부터 나의 목표가 깨끗하게 비어있는 자궁이었던 것처럼.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려서 또 마음이 아파왔다. 언제까지 나는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못하고 가능하면 내가 상처받는 쪽으로 해석하려들까.


이른 시기의 자연유산은 너무나 흔한 일이고 곧 재임신이 된다면 아마 이 시기의 나를 떠올리며 그렇게까지 우울할 필요는 없을텐데 하고 안타까워 할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나는 두렵다. 이것이 앞으로 오래오래 길어질 불행의 시작에 불과할까봐. 그럼 개미씨 말대로 아기 없이 살면 되지 뭐 생각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안다. 아마 나는, 어쨋든 당분간은, 계속 임신을 시도할테고 그러다 또다시 잘못된다면..? 유산이라는 과정이 나에게 주는 커다란 상실감과 절망감은 절대로,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한번은 멋모르고 당했다해도 두번은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잠시 품었다 허무하게 떠나 보낼 바에야, 아예 생기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흔한 일이라는데, 의사는 심지어 그냥 생리한 셈 치라던데, 나는 왜이렇게 슬픈걸까. 이 슬픔은 다 어디에서 오는걸까. 다른 사람처럼 무던하게 차분하게 다음을 기약할 순 없는걸까.. 어쩌면 내가 남들보다 약해빠진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유난떠는 것 같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다. 무섭고 슬프다. 날은 또 왜 이렇게 좋은지. 햇살이 눈부시다. 잔인한 오월이 지나고 있다.



Nice(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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