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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Aug 09. 2020

여전히, 유산 후유증

2018년 6월 3일의 일기


하루에도 몇 번씩 유산을 검색하고 있다.




맘까페에서 올라온 글의 작성자 닉네임을 클릭하면 그 사람이 쓴 모든 글을 볼 수 있는데, 유산 이후에 결국 아이를 다시 가졌는지, 얼마나 걸렸는지를 꼭 확인해 본다. 대부분이 몇 달, 길면 1-2년 안에 임신을 하고 출산까지 했다. 물론 그 사이 몇 번의 유산을 더 겪는 사람도 많았다. 한참을 다른 사람들의 좌절 후 성공담에 빠져 있다가 지겨우면 아기 초음파 사진도 보고.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는 왜 아이를 잃었을까.


인터넷에서 초반에는 거의 누워 지내야 좋다는 조언을 많이 보기는 했다. 그러나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마냥 누워있지만은 못했고 주말에 외출을 하는 날도 있었다. 내가 만약 그 2주간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면  아기는 괜찮을 수 있던 것일까. 임신을 하면 꼼짝없이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걸까. 그렇다면 회사를 다니며 임신도 하고 아이도 낳은 그 수많은 여자들은 다 뭔가.

혹시...

무거운 육아 대백과 사전을 받고 빨리 읽고픈 맘에 배 위에 살짝 올려놓았던 게 잘못된 걸까. 쭈그려 앉아있다 일어났을 때 오른쪽 난소 자리가 한순간 끊어지듯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일까. 아니면 유산 전날 모르고 마신 율무차 때문은 아닐까.. 머릿속으로 스치는 수만가지 잘못의 가능성. 이제와 알 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유산의 이유가 미칠 듯이 궁금하다. 신을 만날 수만 있다면 붙잡고 묻고 싶을 정도로.




회사에선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낸다. 5주차부터 초기임산부 단축근무를 신청해두었기에 유산한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고, 대신 일주일 병가를 냈다. 일주일 뒤, 조금도 마음이 나아지지 않은 채로 출근했지만, 괜찮은 척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다들 내 눈치를 볼까 봐 일부러 크게 웃고 말을 걸었다. 그러다 한 번씩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에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지만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서 걱정어린 다독임도, 따뜻한 위로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차라리 없었던 일처럼 대해주는 게 좋았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멍하니 있었다. 6월이 되어 조금씩 길어지는 해가 저물고 끝내 어두워질 때까지, 거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그즈음의 나날들을 하루씩 되감아본다. 자꾸만 떠오르는 후회들은 눈물이 되어 일렁인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땐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좀 더 조심하고 좀 더 신경 쓸 것 같은데. 절대 돌아갈 순 없겠지. 야근이 잦았던 개미씨는 요즘엔 나를 위해 집에 최대한 일찍 오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얼마든지 이러고 누워 있을 수 있는데. 시간이 별로 없다. 개미씨가 집에 오기 전까지만, 조금만 더 후회하자.



Hanoi(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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