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식 질문법으로 되찾는 생각의 주도권
지난 글에서는 자동화 편향과 인지적 외주화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자동화 편향은 AI가 틀렸음에도 그 결과를 맹신하는 현상이고, 인지적 외주화는 생각 자체를 AI에게 떠넘기는 현상입니다. 두 현상 모두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생각하는 힘"을 잃어갈 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AI를 더 잘 사용하기 위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라는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AI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명령어를 입력하는 단계를 넘어 "질문하는 능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답을 잘 얻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이 더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2,4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문답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CSU)의 교육·학습 연구소는 진정한 배움과 비판적 사고는 단방향의 지식 전달이 아니라, 상호 질문과 응답의 과정에서 "사고의 확장"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를 키우며, 생각의 외주화나 자동화 편향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1)
콜로라도 주립대학(CSU)의 연구소는 소크라테스식 대화에서 교사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님을 주목합니다. 우리가 AI를 대할 때도 이 관점이 필요합니다. AI를 단순히 업무를 대신해주는 "전문가"로 쓰기보다, 함께 대화하는 "상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질문의 주체가 바로 '나'라는 감각을 되찾을 때, 비로소 AI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문답법이란?
상호 문답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방식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통해 깊이 있는 이해를 끌어냅니다.
이 방법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 각자의 신념과 전제 조건을 탐색하여 깊이 있는 이해와 비판적 사고를 유도합니다. 고전 철학에서는 질문을 생각의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했습니다.
- 소크라테스: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상대의 전제를 해체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했습니다.
- 플라톤: 참된 앎은 외부 주입이 아니라, 내적 성찰을 통해 깨어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 현대 비판적 사고 이론가(Paul & Elder): 비판적 사고란 사고를 개선할 목적으로 생각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결국 질문 능력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아닙니다. 나의 인지 체계를 단련하고 개선하는 구조적인 훈련입니다.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의 핵심은 "생산적 불편함(Productive Discomfort)"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AI가 내놓는 매끈한 답변은 당장은 달콤하지만, 우리의 사고를 멈추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 관점의 전환: AI에게 요약을 시키는 대신, "이 아이디어의 근본적인 전제가 무엇인지 분석해 줘"라고 입력해 보세요.
- 사고의 확장: 대화를 통해 나의 논리적 근거를 짚어보다 보면, 정답보다 더 중요한 "질문의 뿌리"를 만나게 됩니다.
대화 중에 막히거나 AI의 반문에 당혹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를 "생산적 불편함"이라 부르며, 이 불편함은 우리의 생각을 더 깊게 다듬도록 돕는 건강한 자극입니다. 이 과정에서 느끼는 약간의 피로감은, 사실 우리의 뇌가 다시 스스로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기분 좋은 신호일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프롬프트를 작성해 보세요.
"내가 이 문제를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5개만 던져줘.
정답을 바로 알려주지 말고, 내가 답변을 하면 근거와 논리를 다시 한번 짚어줘.
우리는 지금 함께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중이야."
소크라테스는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소크라테스 -
우리의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의 중심이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결과를 뒷받침하는 "사고 체계"를 향할 때, 전문성은 깊어집니다. AI에게 나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분석해달라는 요청하는 과정은, 결국 나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하는 고도의 성찰 작업입니다.
결국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을 AI 활용에 도입한다는 것은, 생각의 주도권을 다시 사람의 "판단"으로 가져오겠다는 선언입니다. AI가 주는 편리한 답에 안주하는 것은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AI의 반문을 통해 내 논리의 빈틈을 채워갈 때, 비로소 우리의 전문성이 확장됩니다.
이전 글에서 우려했던 "취약한(Brittle) 인재"에서 벗어나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AI와 함께 더 깊게 고민하는 "성실한 탐구자"가 되는 데 있습니다.
"취약한(Brittle) 인재"에서 벗어나는 길은
AI와 함께 더 깊게 고민하는 "성실한 탐구자"가 되는 데 있습니다.
AI 시대의 전문성은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답을 검증할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결정됩니다. 질문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것, 이것이 AI 시대에 진정한 인재로 살아남는 방법일 것입니다.
1) https://tilt.colostate.edu/the-socratic-meth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