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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 ‘우리’를 살렸다

12.3 내란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by 조하나


어둠이 내리기 전에는 언제나 불길한 고요가 찾아온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 대기는 숨을 죽이고, 거대한 강둑이 무너지기 직전 보이지 않는 실금이 먼저 가는 법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검찰 출신 인사들이 권력기관 곳곳에 포진하며 충성을 중시하는 수직적 권력 구조가 공고해졌다. 이른바 ‘검찰 국가’라 불리는 시대,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자 생존의 법칙이 되어버린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의 공직자들은 침묵을 택했다. 그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모두가 불의를 외면하고 방치할 때, 역사는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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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이었다.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한 젊은 해병의 억울한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단 한 사람. 그가 절대적인 최초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저항은 침묵하던 다수의 양심을 흔들어 깨운 최초의 거대한 파열음이었다.


2023년 7월,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채수근 해병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던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법과 원칙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나침반을 따랐다. 그러나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상부의 압박은,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모두 버리라는 요구와 다름없었다. 그것은 동료 대다수가 택했을 침묵과 순응이라는 안온한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가시밭길로 걸어 들어가는 결단이었다.


그가 마주한 것은 단순히 조직의 불이익이 아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들에게까지 닥쳐올지 모를 권력의 차가운 보복, 사회의 무관심, 나아가 ‘집단항명 수괴’라는 무시무시한 낙인과 함께 쏟아질 비난의 화살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 젊은 병사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진실을 외면하는 부끄러움을 택하지 않았다. 그 선택은 견고해 보이던 체제에 가해진 첫 번째 균열이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나비의 첫 날갯짓이었다.




나비의 날갯짓, 그 공명의 시작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폭풍을 일으키듯, 박정훈 대령의 고독한 투쟁은 거대한 공명의 시작이었다. 그의 저항은 계산된 침묵과 무관심이라는 두터운 벽을 뚫고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하나의 선례를 만들었다. 이는 확신을 갖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소수가 결국 다수의 인식을 바꾸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사회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의 ‘소수자 영향 이론’의 생생한 증거였다. 그가 온몸으로 겪어냈을 고통과 비난을 지켜보며, 또 다른 양심들이 어둠 속에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백해룡 경정은 거대한 마약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다 ‘용산’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좌절당했다. 그 역시 한직으로 밀려나며 권력의 무자비함을 체감했지만, 박 대령의 선례는 그에게 침묵이 더 큰 죽음임을 일깨웠다. “박정훈 대령이 그 길을 먼저 가셨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그의 고백은, 한 사람의 용기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넘어설 힘이 되는지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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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비 효과는 시스템 바깥으로까지 번져나갔다. 평범한 회사 회계 직원이던 강혜정 씨는, 공식 직함 하나 없이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여론조작과 국회의원 공천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비선 실세 명태균의 실체를 녹취록을 통해 폭로했다. 이는 사적 관계가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어떻게 농단할 수 있는지 그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 저항의 연쇄 고리는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 김규현 변호사에게도 이르렀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 이종호가 대통령 부부를 ‘V1, V2’라 칭하며 채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임성근 사단장의 구명을 로비하는 내용이 담긴 ‘VIP 녹취록’을 폭로했다. 이는 대통령실이 왜 그토록 채상병 사건 수사에 예민하게 개입했는지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며, 흩어져 있던 의혹의 파편들을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시켰다. 박 대령을 변호하기 위해 시작된 그의 행동은, 자신을 ‘정치 공작꾼’으로 매도할 정권의 공격을 무릅쓰고 진실을 향해 나아간 또 하나의 저항이었다.




12월 3일, 공포를 넘어선 위대한 저항


그리고 마침내, 2024년 12월 3일의 밤이 왔다. 모든 균열과 부패의 악취를 일거에 덮어버리려는 듯, 권력은 12.3 불법 비상계엄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택했다. 헌법과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고 동조하던 다수의 침묵 위에서, 권력의 광기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사당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대통령의 명령이 통신선을 타고 흐를 때, 그 명령을 받은 이들은 역사의 폭풍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수많은 지휘 계통의 공직자들이 불법적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따를 준비를 하던 그 순간, 단 몇 사람의 “아니오”가 역사의 물줄기를 돌렸다.


국가정보원의 홍장원 1차장은 대통령과의 직접 통화에서 떨어지는 위헌적 명령을 듣고, 이를 하부에 전달하지 않고 자신의 선에서 차단하는 소극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는 명령 체계의 중간에서 불법적 지시를 무력화시키는 ‘인적 방화벽’이 되었다.


특전사를 지휘하던 곽종근 사령관은 이미 국회에 배치된 부하들에게 실탄 사용을 금지하고, 최종적으로는 ‘항명’임을 인지하면서도 재앙을 막기 위해 작전 중지를 명령했다. 그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사유’의 힘으로,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대리인 상태’에 빠지기를 거부했다.


그 밤, 당시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의 호소에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항은, 존 로크가 설파한, 신탁을 배반한 권력에 맞서는 인민의 ‘저항권’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장면이었다. 결국 국회 본회의장에서 울려 퍼진 190명 만장일치의 ‘계엄 해제’ 의결로 계엄은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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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르텔: 저항이 없었던 유일한 성역


박정훈의 외침이 군에서, 백해룡의 폭로가 경찰에서 터져 나왔듯, 다른 국가기관에서도 미약하나마 저항의 목소리는 존재했다. 감사원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무리한 표적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이견과 갈등을 겪었다. 사법부 역시 여러 판결을 통해 정권의 의도와 배치되는 판단을 내리며 행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역할을 수행하려 애썼다. 이들의 저항은 비록 거대한 흐름을 만들지는 못했으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소한의 직업적 양심과 제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 곳,
이 거대한 저항의 연쇄 반응에서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한 조직이 있었다.

국가의 불의에 맞서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최후의 보루.
바로 대한민국 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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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단 한 명의 검사도 국익과 정의를 위해 용기 있게 나서서 권력의 민낯을 폭로하거나 그 부당한 칼날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정권의 태생적 정체성인 ‘검찰 국가’라는 개념 자체에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검사들이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한 구조 속에서, 검찰 조직은 정권과 거의 완벽하게 일체화되었다. 검찰에게 정권에 대한 저항은 곧 자신들의 선배이자 동료, 나아가 조직 전체의 기득권을 향한 ‘반역’으로 여겨진다. 이는 단순히 기회주의적 선택을 넘어, ‘나는 그저 시스템의 부속품일 뿐’이라는 자기기만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권위주의 체제 하 개인의 심리적 마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검사동일체 원칙’의 망령, 즉 검사들이 상부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조직 문화의 그림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이익공동체’라는 형태로 부활하여 조직 전체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막아버렸다.


그 결과, 검찰총장을 비롯한 지휘부부터 일선 검사에 이르기까지, 검찰은 권력의 폭주를 견제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권력의 의지를 관철하는 가장 날카롭고 충직한 도구가 되었다. 다른 기관의 저항자들을 옭아매고, 내부고발자들을 수사하며, 정권의 정적을 향해 칼날을 휘두르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조직이 가장 불의한 권력의 성역이 되어버린 이 비극적 아이러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아픈 상처로 남게 되었다.




벼랑 끝에서 얻은 교훈



결국, 12.3 내란의 실패는 민주주의 제도의 자동적인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다수가 침묵하고 방관하며 심지어 동조할 때, 소수의 평범한 영웅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으킨 저항이 서로 공명하고 연대한 기적에 가까운 결과였다.


박정훈, 백해룡, 강혜정, 김규현, 홍장원, 곽종근. 이 이름들이 영원히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용감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헌법과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외면한 채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려 했던 거대한 침묵의 바다 한가운데서, 기꺼이 외로운 등대가 되기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듯이 동시에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검찰의 사냥개들,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심우정 전 검찰총장, 이창수 전 서울지검장 등이 있다.


우리는 그날 밤, 민주주의란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불의한 권력이 주는 거대한 공포와 외로움을 이겨내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한 용기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그 모든 위대한 저항의 시작에는, 한 젊은 병사의 죽음 앞에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던, 단 한 사람의 고독하고 두려웠던 결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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