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미사로 보는 이재명 정부의 언어와 철학.
2025년 6월,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치 실험의 막을 올렸다. 6.3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는 아주 미세한 언어적 선택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사용하는 '대통령은'이라는 호칭이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하는 '통치의 새로운 문법'을 들여다보는 데 이 작은 접미사 하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어만큼 관계의 역학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언어도 드물다. 특히 존칭의 사용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그리고 대상이 되는 인물 사이의 사회적 거리와 권력의 무게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저울과 같다. 대통령실 브리핑이라는 공식적인 무대에서 대통령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그래서 단순한 호칭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정부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국민과 어떤 관계를 맺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역사적으로 '대통령께서는'이라는 표현은 대통령을 일반 국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격상시키며, 보이지 않는 권위의 벽을 쌓아 올리는 역할을 했다. 그 앞에서 국민은 국가 원수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듣는 객체가 되기 쉬웠다. 하지만 ‘대통령께서는’ 대신 쓰인 '대통령은'이라는 표현은 그 벽을 허물고 대통령을 '직책'을 수행하는 한 명의 공직자로 되돌려 놓는다. 권위의 색채가 빠진 자리에는 '최고 경영자(CEO)' 혹은 '국민의 첫 번째 공복(public servant)'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들어선다.
대통령실의 브리핑의 대상은 ‘언론사’가 아닌 ‘국민’임을 이재명 정부는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 브리핑룸에 추가 카메라를 설치해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기자들의 모습과 이에 답하는 참모들의 모습을 국민에게 동시에 보이겠다는 파격적인 결정으로 이러한 의지를 알 수 있다. 대통령실이 브리핑을 통해 국정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는 대상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고, 대통령은 ‘일꾼’의 입장이니 ‘대통령께서는’이 아니고 ‘대통령이’라고 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언어는 "명실상부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 선언과 정확히 조응한다. 대통령의 말을 빌려 그를 국민의 '일꾼'으로 낮추는 언어적 실천은, 곧이어 장·차관 후보자를 국민에게 직접 추천받는 '고위공직자 국민추천제'라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된다.
강 대변인이 "국민이 국가 운영의 주체가 되어 주도권을 행사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이 제도를 설명할 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대통령은'이라는 주어와 '국민이 추천한다'는 정책의 술어는 완벽한 하나의 문장을 이룬다. 언어는 정책의 철학적 배경이 되고, 정책은 언어가 암시하는 새로운 권력관계의 구체적 증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대변인이 '대통령은'이라고 말할 때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당신이며, 우리는 당신의 대리인으로서 그 결과를 보고한다'라는 새로운 계약이 국민과 정부 사이에 맺어지는 셈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통령께서는'이라는 극존칭에 익숙해져 왔다. 그 말속에는 대통령을 국가의 정점이자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는 무의식적 합의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은/는'이라는 조사 하나가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말실수나 습관의 변화가 아니다. 여기에는 대통령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닌, 국민의 뜻을 받드는 '최고 실무 책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정교하게 설계된 철학이 숨어있다.
이 정교한 서사 전략의 중심에는 강유정이라는, 비전형적인 대변인이 있다. 그녀는 다선 의원이나 언론사 간부 출신이 아닌, 문학과 영화를 비평하며 평생을 보낸 인문학자다. 신춘문예 3관왕, 대학교수,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 그녀의 이력은 '정치'가 아닌 '해석'의 영역에 뿌리내리고 있다.
비평가의 본질은 서사와 상징, 형식이 어떻게 현실의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를 꿰뚫어 보는 데 있다. 강 대변인의 발탁은 이재명 정부가 대변인의 역할을 단순한 '발표자'가 아닌, 정부의 철학을 국민의 마음에 가닿게 할 '서사 설계자'로 규정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녀에게 '대통령은'이라는 호칭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캐릭터를 국민의 대리인으로 구축하려는 비평가적, 미학적 판단의 결과물이다.
그녀가 한 인터뷰에서 "언어를 배우자 미래를 보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인생 책으로 꼽은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언어가 세상을 인식하는 틀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그녀의 신념, 즉 대통령을 그리는 언어를 바꿈으로써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의 근본 인식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엿보게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실 대변인은 언론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데 용이한 전통 언론인 출신으로 주로 기용됐다. 이런 관행을 깨고 언론인 출신이 아닌, 인문학자 출신의 강유정 대변인을 발탁한 것은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면 쓰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 철학이 인사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정치적 배경이나 인맥이 아닌, '정부의 철학을 정교한 서사로 소통하는 일'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능력' 그 자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파격은 민간기업 네이버 출신 AI 전문가인 하정우를 초대 AI미래기획수석으로 영입한 사례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재명의 곁에서 오랫동안 AI관련 정책 자문을 해온 박태웅 의장이 이 자리에 오를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재명의 선택은 하정우였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생각하는 '능력'이 전통적인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과 문제 해결 능력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 철학은 다시 '고위공직자 국민추천제'라는 시스템으로 확장된다. 강유정이라는 한 개인의 발탁을 가능하게 한 그 철학을, 이제 국민 모두에게 열린 기회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사에서 피어난 ‘철학’의 씨앗은, ‘언어’라는 물을 만나 ‘정책’이라는 나무로 자라난다. 이 세 가지가 서로를 증명하고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재명 정부 초기 서사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강행했다.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의 낭비, 보안의 취약성, 비효율적 동선, 이로 인한 군 시설의 타격 등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와 국민 여론을 모두 무시했다. 용산 대통령실로 옮긴 후 윤석열의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은 단 몇 번의 시도 끝에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대통령실 이전 이유가 무색하게도 역시 대통령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무기한 중단됐다.
윤석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공무원이나 참모들 사이에서 대통령을 ‘VIP’로 지칭하는 문화가 존재했는데, 이는 대통령을 국민과 수평적 관계보다 조직 내 최고 결정권자로 여기는 시각을 반영한다. 또한 이도운 대변인 등은 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라는 전통적인 존칭을 사용했다. 동시에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배우자 김건희에 ‘여사님’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언론에 공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이재명 정부의 언어 전략은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와 문재인 정부의 ‘탈권위’ 기조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국민 주권’이라는 뚜렷한 이념과 인문학적 감수성이라는 정교한 도구를 결합해 한 단계 진화시켰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이제 겨우 3주가 지났다. 하나의 언어적 선택이 국정 운영 전반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이 정교한 서사 전략이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현실의 도전 속에서 어떻게 그 일관성을 유지하고 구체화될지, 국민과의 새로운 계약을 끝까지 이행해 나갈 수 있을지는 날카로운 감시의 시선과 따뜻한 응원의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새로운 정부의 문법이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희망과 기대의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품격은 그 나라가 사용하는 언어의 품격과 무관하지 않다. 권력의 언어를 바꾸려는 이 과감한 시도가, 결국 우리 모두가 주인 되는 새로운 공화국의 풍경을 그려낼 수 있을지, 우리는 지금 그 첫 문장을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