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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이재명, 대통령 공식 사진으로 본 시대정신

‘초상’에서 ‘풍경’으로, 렌즈는 권력의 가장 정직한 고해성사다.

by 조하나

렌즈는 권력의 가장 정직한 고해성사다

한 장의 사진.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대통령의 공식 사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시대의 망막에 맺힌 상(像)이며, 권력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고해성사다.


사진은 정교하게 구축된 정치적 언어이자, 보이지 않는 국정 철학을 가시적인 이미지로 번역하는 상징의 연금술이다. 프레임의 구도, 시선의 방향, 여백의 깊이는 지도자와 국민 사이의 거리를 규정하고, 시대가 갈망하는 리더십의 본질을 소리 없이 증언한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개의 정부, 두 명의 사진가, 그리고 그들이 빚어낸 두 개의 판이한 시각 세계를 마주한다. 이는 단순히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개의 다른 눈, ‘복원’의 미학과 ‘단절’의 시학(詩學)이 벌이는 거대한 기호학적 전쟁이다. 이 전쟁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초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목격한다.







내부자와 외부자



익숙한 질서의 복원: 사진가 김용위와 권위의 문법


윤석열 정부의 렌즈는 ‘내부자’ 김용위의 손에 들려 있었다. MB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 전속으로 활동한 그의 이력은, 그 자체가 ‘검증된’ 보수 정치의 시각적 문법으로의 회귀를 약속하는 상징적 신호였다. 그의 재등장은 특정 정치 계보와의 연속성을 통해,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고 익숙한 권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과 인간미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는 후보의 사진은 그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이 ‘인간화’ 프로젝트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 권력의 중심을 전제한 채 그 권위를 대중적으로 소비하기 좋은 형태로 부드럽게 포장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는 잘 통제된 시나리오를 통해 ‘인간적 면모’를 연출하는, 이른바 ‘연출된 진정성’이다. 권력의 구조는 질문받지 않으며, 인간미는 그 권위를 위한 장식으로 동원된다.








낯선 시선의 도래: 사진가 위성환과 전복의 미학


반대편에 이재명 정부의 사진가 위성환이 서 있다. 프랑스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하고, 유럽의 탱고 무용수들을 렌즈에 담아온 예술가. 정치 사진 경험이 전무한 그의 이력은 ‘결점’이 아닌, 기성 문법과의 ‘단절’을 위한 최고의 ‘자산’으로 선택되었다. 이는 ‘뻔한 정치 사진’을 거부하고 새로운 리더십의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외부자’의 영입이었다.









그의 사진 철학의 뿌리에는 버락 오바마의 사진가 피트 수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대통령을 클로즈업하여 권위를 세우는 대신,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좇는다. 때로는 그의 등을 찍어, 그가 마주한 세상의 풍경을 함께 보게 한다. 공간과 여백을 담아, 한 개인을 제도의 무게와 역사의 맥락 속에 겸허히 위치시킨다. 그의 사진은 권력을 전시하는 대신, 권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이는 감정적·맥락적 진실을 포착하려는 ‘예술적 진실성’의 추구다.











두 개의 공화국: 초상과 풍경의 정치학



시선의 주인: 태양의 자리 vs. 길 위의 동행


두 정부의 사진은 ‘누가 주인공인가’라는 질문에 극명하게 다른 답을 내놓는다. 윤석열 정부의 사진 속에서 대통령은 언제나 프레임의 중심, 즉 ‘태양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거나, 다른 권력자를 향하며 위계적인 질서를 확인시킨다. 카메라는 권력을 숭배하고, 관객은 그 권력을 경배하도록 초대받는다.











반면 위성환의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대통령을 중심에서 비껴가게 한다. 구내식당 사진의 진짜 주인공은 대통령이 아니라 환하게 웃는 직원들의 얼굴이다. 이태원 추모 골목을 담은 사진의 초점은 대통령의 표정이 아니라, 그의 시선 끝에 매달린 비극의 공간 그 자체다. 취임식 사진에서조차 그는 거대한 국회 로텐더홀 안의 작은 점처럼 묘사된다. 여기서 사진의 기능은 ‘대통령을 보는 것’에서 ‘대통령이 보는 것을 함께 보는 것’으로 전복된다. 초상화는 비로소 풍경화가 되고, 국민은 관객에서 역사의 동행자로 그 위상이 바뀐다.

























영부인의 정치학: ‘VIP2’의 등극과 ‘보이지 않는 손’


영부인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은 두 정부의 시각 전략의 가장 첨예한 대립 지점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영부인은 단순한 배우자를 넘어, 서사의 공동 주연이자 때로는 논란의 진원지 그 자체였다. ‘VIP2’라는 호칭, 팬클럽을 통해 유통되는 사적 이미지의 공론화는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물며 전례 없는 시각적 부상을 이끌었다.











특히 캄보디아 환아 방문 사진은 ‘빈곤 포르노’라는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다. 이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선행을 돋보이게 할 ‘소품’으로 전락시켰다는 윤리적 질문을 던졌다. 연출된 조명과 오드리 헵번을 연상시키는 구도는 진정성 대신 자기애적 욕망의 전시라는 비판을 낳았다. 대통령실 사진이라는 공적 자산이 개인의 소셜미디어처럼 ‘사유화’될 때,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훼손되는가를 드러낸 비극적 사례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반작용처럼, 이재명 정부의 영부인은 의도적으로 서사의 주변부로 물러난다. 그는 국가의 공식 의전이라는 약속된 역할에만 등장할 뿐, 시각적 서사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는 전임 정부의 고위험 전략이 초래한 정치적 부채를 반면교사 삼아, 논란의 소지를 원천 차단하는 저위험·관례적 접근이다. 한쪽이 ‘파워 커플’ 브랜드를 구축하려다 좌초했다면, 다른 한쪽은 영부인의 시각적 존재감을 최소화함으로써 안정을 택했다.












시대정신의 시각화: 복원된 왕국과 약속된 광장


결국 두 사진가의 렌즈는 각 정부가 꿈꾸는 국가의 비전을 향한다. 윤석열 정부의 시각 언어는 ‘다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전통적 권위로의 복원’으로 해석했다. 새로운 대통령실 로고를 만들고 격식과 위계를 강조하는 사진을 통해, 그들은 법치와 원칙이 바로 선 ‘강력한 리더십’의 시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변화에 대한 피로감과 안정된 질서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사회 일각의 욕망에 조응하는 전략이었다.



검찰을 연상케했던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이 만든 새 로고





반면 이재명 정부의 사진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철학의 시각적 구현체다. 폐기되었던 이전 로고를 복원하는 상징적 행위로 시작하여, 대통령을 중심에서 해체하는 파격적 구도를 통해 ‘국민이 주인’이라는 명제를 끊임없이 증명하려 한다. 그의 사진은 하향식 권위에 대한 회의와 수평적 소통에 대한 갈망이 교차하는 시대정신에 말을 건다.




이전에 쓰던 원래 로고로 되돌아간 이재명 정부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김용위에서 위성환으로의 전환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초상이 중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앙집권적 권위의 ‘초상화’ 시대에서, 공감에 기반한 분산적 대화의 ‘풍경화’ 시대로.













오늘날처럼 이미지가 범람하고 진실이 의심받는 시대에, 대통령의 사진은 단순한 홍보물을 넘어, 우리가 어떤 국가를 원하는지에 대한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사진의 초점, 구도, 심지어 사진가의 이력서마저 이 전쟁의 무기가 된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사진을 읽는 행위는, 곧 우리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는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지도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이 공화국을 어떤 기억으로 채워나갈 것인가? 렌즈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야 할 책임은 결국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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