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받아쓸 수 없다.
아빠는 평생 전국의 토목건축 현장을 누비며 소장이 되었다. 새로운 현장에 부임할 때마다 아빠 앞에 가장 먼저 나타난 건 지역 신문사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귀신같이 먹이 냄새를 맡고 나타나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좋게 좋게 갑시다”라며 아빠를 향해 히죽거렸다. 그 웃음 뒤에는 기사 한 줄로 멀쩡한 현장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노골적인 협박이 숨어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빠가 왜 그리 회사를 자주 옮겨야 했는지 몰랐다. 건설사의 토목건축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기업인과 지역 유지, 기자, 교수들이 한통속이 되어 뇌물과 청탁의 끈적한 관계망을 형성했다. 아빠는 그들에 머리를 조아리는 대신 사직서를 냈다. 나는 시간이 지나 머리가 크고,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후에도 10년을 홍대 길거리를 전전하다 30대에 늦깎이 잡지사 기자가 된 후에야 아빠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그 고단한 침묵과 잦은 이직은, 아빠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벌인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을.
한때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사람들과 현직 언론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던 미국 드라마 <뉴스룸>이 제시하는 이상주의적 목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드라마 속 ‘문명화 임무(mission to civilize)’는 공론장을 고양시키고, 권력에 책임을 물으며, 어리석음에 맞서 진실을 말하겠다는 야심 차고 외향적인 프로젝트다.
한국 저널리즘의 비극은 바로 이 두 사명의 근본적인 괴리에서 비롯된다. ‘문명화 임무’가 외부를 향한, 능동적이고 낙관적인 프로젝트라면, 아빠의 싸움은 내부를 향한, 방어적이고 비관적인 자기 보존의 행위였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산업화 시대와 고성장 시대를 거치며 전국의 토목건축 현장에 시간을 묻은 아빠의 조용한 투쟁과 대한민국 언론사 기자로서의 나의 위기는 결코 별개의 사건이 아니었다.
오늘날 한국 언론을 병들게 한 ‘받아쓰기 저널리즘’의 병폐는 현대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에 기생하고 협력하며 생존과 번영을 도모해 온 길고 부끄러운 역사 속에서 형성된 제도적 DNA다.
현대적 병리의 뿌리는 주요 언론이 일제 식민 권력과의 협력을 통해 생존과 번영의 기틀을 닦았던 원죄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는 창간 초기부터 이완용, 송병준 등 거물급 친일 인사들이 참여한 ‘대정친목회’와 깊은 관련을 맺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협력은 노골적인 부역으로 변질되었다.
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굴복이 아니었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을 ‘아군(我軍)’으로 칭하며 승전보를 1면에 대서특필하고, 제호 위에 일장기를 인쇄하는 등 제국의 질서에 자발적으로 편입하려는 적극적인 충성 맹세에 가까웠다. 이는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 생존을 넘어 번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초기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복종의 유전자는 해방 이후 대상을 국내 군사 독재 권력으로 바꿨을 뿐, 그대로 이어졌다. 주류 언론은 박정희 유신 독재를 찬양하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하며 국가폭력에 동조했다. 전두환 신군부에 대해서는 ‘인간 전두환’과 같은 특집 기사를 통해 그를 ‘구국의 지도자’로 미화하는 데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행태가 제도적으로 완성된 결정적 사건은 1980년 신군부가 단행한 ‘언론 통폐합’이었다. 이 조치는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강제로 폐간시키고, 충성스러운 매체들이 그 시장을 독과점하도록 허용했다. 이는 권력에 대한 순응이 곧 시장 지배력으로 치환될 수 있음을 언론계 전체에 각인시킨 사건이다.
당시 <조선일보> 사주가 쿠데타 세력의 핵심 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언론계 대표로 참여한 것은 이러한 공생 관계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은 ‘받아쓰기’ 문화가 단순한 생존 전략에서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언론 통폐합은 정치적 복종이 단순한 도덕적 타협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공인된 시장 독점의 경로임을 증명했다. 이로 인해 권력과의 협력은 일부 언론 지도자들에게 부끄러운 과거가 아닌, 상업적 성공의 초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원죄’는 단순한 역사적 오점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언론의 전략적 선택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청사진으로 남아있다.
암흑의 시대에도 모든 펜이 권력의 목소리를 받아쓴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기자들의 처절한 저항이 있었다. 1974년, 박정희 유신 독재의 폭압에 맞서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며 정권의 부당한 간섭에 맞섰다.
정권의 보복은 교활했다. 직접적인 검열 대신,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 광고를 조직적으로 해약시키는 경제적 탄압을 가했다. 광고 수입이 끊긴 신문 지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백지로 채워졌다. 이것이 바로 ‘백지광고 사태’다. 그러나 이 텅 빈 지면은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저항의 메시지가 되었다. 시민과 학생들은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동아일보 힘내라”와 같은 작은 ‘격려광고’를 내기 시작했고, 백지였던 지면은 독자들의 연대로 다시 채워졌다. 이 투쟁은 결국 경영진의 굴복과 100여 명의 기자들이 거리로 쫓겨나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해직 기자들이 결성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는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과 언론 개혁의 상징이 되었고, 훗날 <한겨레> 창간의 주역이 되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더욱 처절한 저항이 있었다. 신군부의 총칼 아래 시민들이 스러져가는 참상을 목격하면서도, 검열 때문에 단 한 줄의 진실도 쓸 수 없었던 지역 기자들의 고뇌는 극에 달했다. 결국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은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는 비통한 선언을 남기고 집단으로 펜을 꺾었다.
이러한 저항들은 단순한 ‘언론 자유’ 투쟁을 넘어선다. 그것은 ‘도덕적 상처’에 대한 인간 본연의 거부 반응이었다.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고, 목격한 진실을 부정하며, 시스템의 거짓말에 동참하라는 강요 앞에서 한 인간의 영혼이 파괴되는 고통에 대한 저항이었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침묵의 거짓말을 강요당했고, 광주의 기자들은 학살을 긍정하는 적극적 거짓말의 공범이 되기를 거부했다. 진실과 거짓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 때, 그 틈으로 영혼은 마모된다. 그들은 ‘영혼이 닳아 없어지는’ 감각을 느낄 줄 아는 ‘인간’이었다. 역사 속 기자들의 투쟁은 그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과거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교묘하고 단단한 '시스템'으로 굳어졌다. 오늘날 한국 언론을 옥죄는 것은 총칼을 든 독재자가 아니라, 엘리트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그들만의 카르텔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사 입사 시험은 ‘언론고시’라 불린다. 이는 단지 그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이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특권 엘리트’ 계급에 편입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실제로 주요 언론사의 채용 결과는 소위 ‘SKY’로 불리는 서울의 최상위권 대학 출신들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며, 이는 기자 집단의 동질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이처럼 좁은 문을 통과한 이들은 견고한 ‘언론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 카르텔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배타적인 행태를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립·탐사보도 매체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다. <뉴스타파>와 같은 독립언론이 아무리 중요한 특종을 보도해도 주류 언론은 이를 인용하거나 후속 보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심지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뉴스타파> 여기자의 손목을 잡아끄는 폭력을 행사하거나, 홍준표 전 시장이 공개적으로 “<뉴스타파>는 찌라시”라며 매체의 기자에 적대감을 드러내며 인신공격을 해도 모든 것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는 기자 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는 그들을 ‘같은 식구’로 인정하지 않는 카르텔의 배타성이 작동한 결과다.
결국 ‘언론고시’는 단순한 채용 절차가 아니라, 이 기득권 언론 시스템이 스스로를 복제하고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불투명하고 정보가 부족한 채용 과정은 정보 접근성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원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며, 정해진 틀 안에서 정답을 찾는 데 능숙한 인재를 선호한다. 이는 체제에 순응적인 사람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한다. 그렇게 선발된 인재들은 ‘기수 문화’라는 위계적 조직 문화 속에서 기존의 가치와 관행을 내면화하며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이 시스템은 저항하거나 도전하는 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가장 잘 이해하고 순응하는 자를 선택하고 보상함으로써 스스로를 영속시킨다.
현대 언론을 구속하는 가장 강력한 족쇄는 자본, 즉 광고다. 한국 언론의 수익 구조는 구독료보다 광고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그 광고의 상당 부분은 소수의 재벌 대기업과 정부로부터 나온다. 이는 언론사에 ‘황금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삼성과 같은 거대 광고주에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가 광고가 끊길 것을 두려워한 언론사들은 알아서 자기 검열을 하고, 지면은 기업의 홍보자료와 구분이 모호한 ‘기사형 광고’로 채워진다.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본령은 자본의 논리 앞에서 무력해진다.
이러한 거시적 구조의 부패는 현장 기자들의 미시적 타락으로 이어진다. “기자님, 기자님” 하는 대접을 받으며 공짜 밥과 술을 얻어먹는 문화, 소위 ‘기자뽕’이라 불리는 이 특권 의식은 기자들을 취재원과 보이지 않는 채무 관계로 묶는다. 날카로운 질문 대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 부패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글 처음에 등장한, 아빠를 현장에서 괴롭혔던 지역 언론의 행태다. “좋게 좋게 갑시다”라는 말로 공사를 문제 삼는 기사를 내겠다고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는 사이비 기자들의 모습은 저널리즘이 어떻게 개인의 이익을 위한 흉기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중앙 일간지의 세련된 기사형 광고와 지역 건설 현장의 저열한 공갈 협박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다 언론의 공적 신뢰를 사적 이익과 맞바꾸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기업 홍보팀과 세련된 언어로 포장되어 있고 후자는 노골적이고 폭력적이지만, 공익이 아닌 돈의 논리에 따라 편집권이 움직인다는 점에서 그 배신의 무게는 같다. ‘기자뽕’은 이러한 거래를 당연한 권리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영혼을 마비시키는 독약이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저널리즘’이 낳을 수 있는 최악의 파국을 목도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한국 언론은 ‘전원 구조’라는 최악의 오보를 양산하며 희망을 기다리던 국민과 유가족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핵심 기능이 총체적으로 붕괴한 사건이었다.
오보의 시작은 공식 발표가 아닌, 근거 없는 소문이었다. 오전 11시경, 한 40대 여성이 외친 “학생들이 전원 구출됐다”는 소리를 들은 단원고 관계자의 가족이 학교 강당 연단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 소식을 전파했다. MBN과 MBC는 오전 11시 1분, 이 소식을 ‘단원고 측’이라는 불분명한 출처를 달아 사실인 양 보도했고, 이는 치명적인 왜곡의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이후 정보는 끔찍한 자기 참조적 ‘에코 챔버(echo chamber)’를 형성했다.
학교에 있던 경찰은 YTN 보도를 보고 ‘학생 전원 구조 확인’이라고 무전 보고했고, 이 무전 내용을 들은 학교 측은 경찰이 공식 확인한 것으로 오인하여 학부모 전체에게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심지어 경기도교육청은 이 문자 메시지와 언론 보도를 근거로 출입기자단에 ‘학생 전원 구조’를 알리면서, 이를 ‘해경 공식 발표’라고 허위로 격상시켜 재공지했다. 언론이 생산한 오보가 공공기관을 통해 ‘공식 정보’로 세탁된 뒤, 다시 언론에 의해 확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참사의 가장 통렬한 지점은 현장 기자의 목소리가 철저히 묵살되었다는 사실이다. 참사 당일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목포 MBC 기자들은 데스크에 “구조자는 160여 명”이라고 수차례 보고했지만, 서울의 본사 데스크는 이를 무시하고 ‘전원 구조’ 자막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이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리가 완전히 전복되었음을 보여준다. 현장의 눈과 귀로 확인한 1차 정보가, 스튜디오 안에서 증폭되고 있던 2차, 3차 오염 정보에 밀려 폐기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받아쓰기’를 넘어, 확인된 사실마저 거부하는 ‘적극적 받아쓰기’의 실패였다.
이후에도 언론은 공포에 질린 6세 생존 아동을 인터뷰하고, 희생자들의 사망 보험금을 그래픽까지 동원해 상세히 보도하는 등 재난을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비윤리적 행태를 이어갔다. 세월호 오보는 돌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수십 년간 한국 언론의 생존 전략으로 굳어진 ‘받아쓰기’ 관행이 낳은 필연적 결과물이었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은 현실 세계의 실제 사건들을 극의 중심에 배치하여, ‘이상적인 저널리즘’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현실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탐구를 제시한다. 특히 시즌 1의 네 번째 에피소드인 ‘I'll Try to Fix You’는 2011년 1월 8일에 발생한 개브리엘 기퍼즈 원의원 총격 사건을 소재로, 사상자 보도에 있어 언론이 지켜야 할 윤리적 원칙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에피소드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열린 유권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총격범 제러드 리 러프너가 기퍼즈 의원의 머리를 포함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연방 판사를 포함한 6명이 사망하고 기퍼즈 의원을 포함한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기퍼즈 의원은 총알이 뇌를 관통하는 치명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생존하여 긴 재활 과정을 거쳤다.
<뉴스룸>은 이 긴박하고 비극적인 사건을 허구의 뉴스 채널인 ACN의 보도 과정을 통해 재구성한다. 극 중에서 ACN의 뉴스팀은 다른 주요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기퍼즈 의원의 ‘사망’을 속보로 타전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실제로 당시 NPR, CNN, Fox News 등 여러 언론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기퍼즈 의원이 사망했다고 오보를 냈던 사실이 있었고, 드라마는 이 현실을 극적 갈등의 핵심 요소로 활용한다. ACN 뉴스룸은 시청률 경쟁이라는 상업적 압박과 진실을 확인해야 하는 저널리즘의 원칙 사이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 가상의 시험대는 사상자 보도의 윤리적 딜레마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며, 세월호 오보 참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뉴스룸>의 기퍼즈 총격 사건 에피소드가 제시하는 저널리즘 윤리의 정수는 단 한 문장의 대사로 요약된다. 경쟁사들이 모두 기퍼즈 의원의 사망을 보도하는 상황에서, 시청률 하락을 우려한 방송사 사장 리스 랜싱은 보도국 통제실로 뛰어 들어와 왜 사망 선고를 하지 않느냐고 앵커 윌 맥어보이와 총괄 프로듀서 맥켄지 맥헤일을 거세게 압박한다. 그는 “당신들이 속보를 내보내지 않는 매 순간, 수천 명의 시청자가 채널을 돌리고 있다. 그게 당신들이 하는 사업이다”라며 저널리즘을 시청률 경쟁이라는 상업적 논리로 정의한다.
이 상업적 압력에 맞서, 당시 10시 뉴스 총괄 프로듀서였던 돈 키퍼가 결정적인 원칙을 선언한다. “그녀는 사람입니다. 사망 선고는 의사가 하는 거지, 뉴스가 하는 게 아닙니다(It's a person. A doctor pronounces her dead, not the news)”. 이 대사는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이자, 재난 및 사상자 보도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최우선 원칙을 명확히 제시한다. 즉, 인간의 생명에 관한 정보는 저널리즘적 ‘특종’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권위 있는 공식 출처(의사, 검시관, 혹은 공식 대변인)에 의해서만 확인되고 보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ACN 뉴스팀은 이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실 확인의 규율’을 실천한다. 그들은 경쟁사들의 보도를 2차 정보로 간주하고, 이를 그대로 받아쓰기를 거부한다. 대신, 현장에 있는 자신들의 기자에게 병원 관계자나 경찰로부터 직접적인 확인을 받아오라고 지시한다. 확인이 계속 지연되자, 그들은 사망을 기정 사실화하는 대신 “기퍼즈 의원이 총에 맞았으며, 상태가 위중하다”는 확인된 사실만을 반복해서 보도하며 공식 확인을 기다린다.
이 과정은 저널리즘 윤리 강령의 핵심 원칙들을 극적으로 구현한다. 첫째, ‘진실 추구 및 보도(Seek Truth and Report It)’ 원칙에 따라, 속도나 형식이 부정확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둘째, ‘피해 최소화(Minimize Harm)’ 원칙에 따라, 확인되지 않은 사망 보도가 피해자 가족과 대중에게 미칠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신중을 기한다. 셋째, ‘독립성(Act Independently)’ 원칙에 따라, 방송사 사장으로 대표되는 상업적, 내부적 압력으로부터 편집권의 독립을 지켜낸다. 결국 기퍼즈 의원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ACN의 원칙적 대응은 빛을 발하고, 그들의 신뢰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이처럼 <뉴스룸>은 ‘사망 선고는 뉴스의 역할이 아니다’라는 명확한 윤리적 기준점을 설정함으로써, 이상적인 저널리즘이 현실의 압박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규범적 모델을 제시한다.
ACN 뉴스팀은 가십, 선정주의, 확인되지 않은 속보 경쟁으로 타락해 가는 미디어 환경에 맞서, ‘정확성’, ‘공정성’, ‘품위’라는 고전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한다. 이는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강조한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며, “첫 번째 충성은 시민에 대한 것”이라는 원칙과 정확히 일치한다.
<뉴스룸>이 보여주는 ‘사망 선고는 의사가 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은 보편적으로 타당하다. 즉, 결과가 아닌 ‘과정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 저널리즘 핸드북이 “정확성이 속도보다 항상 우선한다”고 명시하고, 미국 전문기자협회(SPJ) 윤리 강령이 “속도나 형식이 부정확함을 변명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뉴스룸>은 이러한 전문직 윤리의 핵심을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극적인 서사로 번역해 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모든 언론인이 시스템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2013년, 손석희 앵커가 JTBC 보도 부문 사장으로 부임하며 한국 언론 지형에 의미 있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이끈 <뉴스룸>은 드라마 <뉴스룸>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가장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손석희 앵커는 첫 방송에서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뉴스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진실을 왜곡하거나 가리지 않고 건강한 시민사회의 편에 서겠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이러한 원칙은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이라는 보도 전략으로 구체화되었다. 다른 언론들이 외면하는 세월호 참사 같은 사안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보도하며 사회적 논의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은 손석희 개인에 대한 높은 신뢰도와 맞물려 JTBC <뉴스룸>을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이 신뢰 자산이 폭발적인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된 사건이 바로 2016년 10월 ‘최순실 태블릿 PC’ 특종 보도였다. 이 보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스모킹 건’이 되어 대한민국을 뒤흔든 촛불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보수 진영과 일부 언론은 ‘태블릿 PC 조작설’을 집요하게 제기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과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조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JTBC의 성공은 기존 언론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 수년간 쌓아 올린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영웅 서사의 끝은 종종 씁쓸하다. 손석희 앵커는 폭행 혐의 등으로 법적 분쟁에 휘말렸고, 이는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 결국 그는 2023년 JTBC를 떠났고, 그의 퇴사 배경에는 JTBC의 심각한 경영난과 구조조정도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었던 그의 퇴장과 함께, JTBC <뉴스룸> 역시 과거의 날카로움을 잃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한 시대의 상징이었던 돈키호테의 쓸쓸한 퇴장은, 한국 사회에서 이상주의적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고 위태로운 여정인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이러한 언론 카르텔의 가장 추악한 민낯은 ‘언론 자유’라는 가치를 수호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기자들은 언론 자유를 보편적 원칙이 아닌,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적 도구로 활용한다.
윤석열 정부 시절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둘러싼 MBC 탄압 사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대통령실은 MBC의 보도가 "왜곡·편파적"이라며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를 내렸다. 이는 명백한 취재 제한이자 특정 언론사에 대한 보복성 조치였지만, 언론계의 반응은 이상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만이 연대의 의미로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을 뿐, 대다수 언론은 침묵하거나 대통령실의 논리를 답습했다.
이러한 침묵은 독립언론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 앞에서 더욱 비겁한 모습을 드러냈다. <뉴스타파> 기자가 국회에서 국민의힘 원내대표 권성동에게 폭행을 당하고, 다른 정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무시당하며, 검찰로부터 수십 차례 압수수색을 당하는 동안, 주류 언론은 이를 '언론 자유의 위기'로 규정하고 연대하는 데 인색했다. 오히려 검찰의 주장을 받아쓰며 '가짜뉴스 수사'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론을 향해 “검찰의 애완견”이라고 비판하자 언론계는 일제히 격분하며 통합된 분노를 표출했다.
이런 한국 언론의 현실은 외부의 시선으로 더욱 명확해진다. <파이낸셜 타임스> 서울지국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던 경험을 회고하며, 대통령실의 과도한 사전 검열 요구가 “탈레반을 인터뷰하는 수준이었다”고 폭로했다. 이것은 한국의 언론 환경이 민주주의 국가의 기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언이다.
한국 언론은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고 서로를 배척하는 카르텔에 가깝다.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의 심각성이 아니라, 공격자의 정치적 성향과 피해자의 카르텔 소속 여부가 언론계의 반응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임이 드러난다. 카르텔 내부의 경쟁자(MBC)가 공격받을 때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방관하지만, 카르텔 외부의 도전자(<뉴스타파>)가 공격받을 때는 이를 외면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과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는 ‘언론 자유’라는 대의명분이 카르텔의 자기 보호 본능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증거다.
대한민국 언론계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내란 세력 윤석열 정부와 부딪히며
12.3 내란 전후로 ‘진보’의 편에 다가선 <한겨레>, <경향>, MBC, JTBC 등도
결국 기득권 언론 카르텔이다.
이들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이들은 언제나 ‘이기는 자’의 편이다.
잡지 기자 시절, 내가 마주한 것은 살아있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잘 관리된 ‘상품’이었다. 인터뷰는 늘 질문지를 미리 보내 ‘민감한 부분은 빼달라’는 요청을 수락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에어컨 소리마저 숨 막히게 조용했던 인터뷰 룸. 나는 준비한 질문의 절반도 채 꺼내지 못했다. 아티스트의 내면에 대해 깊게 물으려 하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앉은 매니저가 “그 부분은 저희가…”라며 단호한 목소리로 대화를 끊었다. 인터뷰의 당사자는 그저 곤란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나는 진실을 캐러 간 그 방에서, 결국 가장 안전하고 매끄러운 거짓말을 받아쓰고 있었다. 연예기획사의 홍보팀이 건네준 보도자료의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일은 저널리즘이 아니었다. 모두가 비슷한 레퍼런스를 베껴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고, 안전한 말만 주고받는 거대한 상업 논리의 시스템 속에서, 나는 내 영혼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이상하게도 그 인공적인 공간에 있을수록, 나는 아버지의 흙먼지 날리던 건설 현장을 떠올렸다. 나는 아빠의 딸이었다. 상업 논리 한복판에서, 팔리는 아이돌 기사 한 줄을 더 넣으라는 편집장에게 나는 끝내주게 음악을 잘 하지만 게으른 기자들 때문에 알려질 기회를 얻지 못한 이름 없는 인디 밴드 인터뷰를 허락해 달라는 ‘거래’를 제안했다. 그런 내 서툰 고집은 불의와 타협하느니 차라리 현장을 떠났던 아빠를 닮아 있었다.
나는 팔리는 기사 대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디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싣고 싶다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마침내 얻어낸 작은 지면 하나. 홍대 근처 좁고 퀴퀴한 지하 연습실에서 만난 그들은, 가진 것은 없었지만 자기가 직접 만든 음악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빛났다. 잘 만든 상품 같은 아이돌과의 통제된 인터뷰로 바싹 마른 내 영혼에, 그들의 서툴지만 진솔한 언어와 깊은 눈빛은 한 줄기 오아시스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기자’란 이미 빛나는 사람의 그림자를 받아쓰는 게 아니라, 흙먼지 속에서 원석을 찾아내 세상에 없던 질문으로 그 빛을 비추는 사람이라는 것을.
결국 잡지에 다 싣지 못한, 혹은 실을 수 없었던 길고 깊은 대화들은 내 개인 블로그 공간에 차곡차곡 쌓였다. 돈 한 푼 안 되는 외로운 기록이었지만, 그것만이 나를 기자답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몸부림은 <뉴스타파>와 같은 독립언론의 모델과 맞닿아 있다. 광고와 협찬,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오직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이들의 존재는 ‘팔리지 않을 진실’도 지속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들은 권력과 자본의 받아쓰기를 거부하고,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드라마 <뉴스룸>이 제시한 ‘문명화 임무’는 저널리즘이 도달해야 할 고결한 이상향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언론 자유’라는 방패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동료를 외면했고, 광고주인 재벌과 기득권의 부패에는 침묵했으며, 정권의 성향에 따라 ‘감시견(watchdog)’과 ‘애완견(lap dog)’의 역할을 오가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왔다. 이러한 선택적 분노는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한다는 언론 본연의 명분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자유’는 누리되 ‘책임’은 회피한다는 깊은 불신을 낳았다.
이러한 신뢰의 붕괴가 낳은 결과는 최근 벌어진 두 가지 상반된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론을 향해 “검찰의 애완견”이라고 비판하자 언론계가 일제히 격분하며 사과를 요구한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이 브리핑 시 질문하는 기자의 얼굴과 소속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조치다. 언론계는 이를 ‘기자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 두 사건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들은 단순히 고립된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신뢰가 무너진 시대에 ‘언론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둘러싼 근본적인 투쟁을 상징한다.
그렇다.
이제 기자들도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황금 티켓처럼 흔들던 특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소수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권력이 된다. 기득권 카르텔 언론사 기자들은 오랫동안 그 권력에 기생해 기자로서 갖는 특권과 권한을 남용해 왔다. 검언유착, 정언유착으로 날조된 정보와 가짜뉴스를 생산하며 권력의 개가 되었고, 그로 인한 대가로 제 주머니를 채우고 배를 불렸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가 이제 그 정보를 대한민국 온 국민에 공개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이름 없는 관계자발’ 출처 불명의 불확실한 정보로 국민을 현혹시키지 말라 당부했다. 기자들이 오직 자신들만 접근할 수 있었기에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정보가 이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공개된다.
언론계는 전통적인 제4부로서의 권위와 존중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반면, 언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대중은 이제 기자들에게 스스로의 질문에 책임을 지라는 투명성을 역으로 요구하고 있다. 수십 년간 언론이 권력을 향해 던졌던 질문의 칼날이, 이제는 바로 그 언론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언론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언론 자유’에 대한 탄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탄압을 가능하게 하는 ‘대중적 불신’과 ‘정당성의 부재’다.
권력은 대중이 언론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언론을 마음껏 공격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전체’ 유튜브 채널 실시간 시청자 순위를 보면 MBC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이른바 ‘진보’라 불리는 대안 언론/정치 비평 채널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기득권 언론을 믿지 않는다. 이러다 몇 년 후엔 지상파 언론사 기자들은 ‘공룡’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기자들아, 정신 차려라. 빙하기가 오고 있다.
결국 한국 언론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권위주의 시대, 과거의 싸움이 외부의 압력에 맞서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내부의 위선과 부패, 시민들의 불신을 극복하고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권력의 목소리를 받아쓰지 않는 것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에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한국의 돈키호테들에게 던지는 새로운 ‘문명화 임무’다. 역사의 초고를 쓰는 이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 펜의 무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무거워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자들아, 2025년 AI 시대다. 정부 기관 브리핑룸이나 기자실, 심지어 아스팔트에 앉아 랩탑으로 타자수 경연 대회 나간 듯 받아치는 것 좀 그만해라. 그럴 거면 차라리 속기사로 직업을 바꿔라. 낯 뜨겁고 창피하다. 해외 선진국 기자들, 그 누구도 그렇게 안 한다. 요즘 현장 음성 녹음과 동시에 텍스트로 옮겨주는 AI 프로그램이 시중에 세고 셌다. 한국어 대응 속도와 성능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키보드 칠 시간에 기관 브리핑에 더 집중하고, 순발력을 길러라. 그리고 기자의 본분인 질문의 칼을 더 갈아라.
결국 영혼은, 결코 받아쓸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