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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가장 깊은 어둠 속, 내면의 별을 보다

3부. 심연의 가르침, 존재의 재발견

by 조하나

밤은 모든 것을 삼킨다. 낮의 현란한 색채와 소음은 사라지고, 오직 고요와 어둠만이 지배한다. 그러나 세노테의 심연은 끝없이 밤이다. 그곳에 발을 디딘 순간, 나는 아득하고 깊은, 진정한 밤을 만났다. 도시의 밤이 여전히 인공적인 빛과 잔여 소음으로 얼룩진 불완전한 어둠이라면, 수중 동굴의 심연은 근원적인 어둠이었다. 그곳에서는 빛 한 줄기조차 존재할 수 없었고, 어떤 소리도 물의 장막을 뚫지 못했다. 오직 나의 호흡기에서 새어 나오는 숨소리만이 이 완전한 고요를 침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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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당혹감과 미미한 공포가 밀려왔다. 시각이라는 가장 강력한 감각이 무력화되자, 나는 방향을 잃은 작은 배처럼 표류하는 듯했다. 익숙했던 외부 세계의 지표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막막한 무(無)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내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외부 감각의 붕괴는 오히려 내면 감각의 폭발적인 확장을 가져왔다. 피부로 와닿는 물의 미세한 진동, 부유하는 먼지들의 움직임, 심지어 내 몸 안에서 흐르는 피의 미세한 흐름까지 감지되는 듯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재정의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외부 자극에 종속되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도시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정보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스마트폰 화면의 휘황찬란한 빛, 이어폰을 통해 쏟아지는 음악과 팟캐스트, 복잡한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 이 모든 자극은 우리의 의식을 외부로 향하게 하며, 정작 중요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보고, 듣고, 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수중 동굴의 심연은 모든 것을 앗아감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속삭였다.


시간의 개념 또한 그곳에서는 무의미해졌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 낮과 밤의 구분은 사라졌고, 시계의 초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1분이었는지 1시간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영원한 현재만이 펼쳐졌다. 이는 마치 지질학적 시간의 흐름 속에 내가 하나의 작은 점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깨달음과도 같았다. 수만 년 동안 형성된 동굴의 암벽은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거대한 시간 앞에서 한없이 겸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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