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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직장/사무실: 일과 관계, 자아실현의 무대

4부. 관계와 삶의 공간들, 연결과 성찰

by 조하나


매일 아침, 우리는 익숙한 전쟁터로 향합니다. 알람 소리는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기상나팔이고, 붐비는 대중교통은 참호로 향하는 좁고 갑갑한 길이며, 사무실의 내 자리는 하루의 성패가 갈릴 작은 초소입니다. 모니터의 푸른빛이 얼굴을 비추고, 키보드 소리가 기관총 소리처럼 공간을 채우기 시작할 때, 우리 내면에서는 어김없이 하나의 질문이 피어오릅니다. ‘나는 왜 지금 이곳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현대인의 삶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조용히 반복되는 독백일지 모릅니다.


직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장소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관계, 그리고 삶의 의미가 가장 치열하게 조각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치열함의 대가로 우리는 종종 일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철학자 칼 마르크스는 이 현상을 ‘소외’라는 개념으로 날카롭게 포착했습니다. 과거의 장인이 나무를 깎아 의자를 만들며 자신의 혼과 기술을 온전히 투영하고 그 결과물에 자부심을 느꼈다면, 현대의 직장인은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가 되어 자신이 하는 일이 전체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노동의 결과물로부터, 창조적인 노동 과정으로부터, 그리고 경쟁과 서열 속에서 동료로부터 분리될 때, 우리는 소외를 경험합니다. 여기에 현대 사무실은 ‘몸의 소외’와 ‘언어의 소외’라는 새로운 층위를 더합니다. 우리의 몸은 스크린 속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거치대가 되고, ‘시너지’, ‘KPI’ 같은 껍데기만 남은 언어들 속에서 진솔한 소통 능력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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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동의 소외를 스크린 위에 가장 상징적으로 그려낸 인물은 바로 찰리 채플린일 것입니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그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쉴 새 없이 나사만 조이다가, 결국 온 세상을 조여버리려는 강박에 시달리고 거대한 공장 기계의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심지어 식사 시간마저 단축시키려는 ‘자동 식사 기계’의 실험 대상이 되어 우스꽝스럽게 고통받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노동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해 버린 산업 사회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그의 희극적인 몸짓은 역설적으로 그 시대 노동자들이 느꼈을 깊은 비애와 인간성 상실을 고발합니다.


물론,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처럼, 우리는 그 부조리한 노동 속에서도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그는 정상에 오르면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행위 자체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신들에게 저항하는 주체적인 인간의 존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의미 찾기’와 ‘자아실현’이라는 구호는 오늘날 또 다른, 더 교묘한 함정을 품고 있습니다. 바로 ‘소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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