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서 식탁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이 또 있을까요. 그저 음식을 섭취하는 생물학적 공간을 넘어, 식탁은 관계가 맺어지고, 이야기가 오가며, 하나의 작은 공동체가 탄생하고 유지되는 신성한 무대이자 제단입니다. 갓 지은 밥의 온기, 찌개가 끓는 소리, 젓가락이 부딪히는 경쾌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사람들의 목소리. 우리의 삶은 이 식탁의 풍경과 함께 기억되고 깊어갑니다.
왜 우리는 타인의 안부를 물을 때 “잘 지냈어?” 대신 “밥 먹었어?”라고 묻는 걸까요? 이 간단한 질문 속에는, 밥 한 끼의 생존이 절박했던 공동체의 기억이 유전자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밥’은 생존 그 자체였고, 상대가 밥을 먹었는지 묻는 것은 그의 실존 전체를 걱정하는 가장 따뜻하고 구체적인 안부 인사였습니다. 이 질문은 “당신의 몸은 무탈한가, 당신의 하루는 안녕한가?”를 묻는, 존재의 근원을 향한 다정한 물음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관계를 시작하고 싶을 때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식사를 제안하는 것을 넘어, “당신과 나의 시공간을 공유하고 싶다”, 즉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가장 보편적인 제안입니다. 이처럼 한국 문화에서 ‘밥’은 생존의 수단을 넘어, 관계와 공동체를 맺는 성스러운 매개체와도 같습니다.
식탁 위에서 우리는 바로 그 관계를 확인하고 존재를 나눕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이를 ‘나-그것(I-It)’의 관계가 ‘나-너(I-Thou)’의 관계로 피어나는 기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를 역할이라는 ‘그것’으로 대하기 쉽지만, 식탁에 마주 앉아 상대의 피곤한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너’와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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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