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깊숙한 곳, 뽀얀 먼지를 덮어쓴 낡은 앨범을 꺼내 펼쳐봅니다. 셀로판 비닐 특유의 냄새와 함께 시간이 정지된 풍경이 드러납니다. 1990년대의 빛바랜 색감 속에서, 지금보다 훨씬 젊은 부모님과 앳된 모습의 내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사진 속 우리는 예외 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는 따뜻하고 아련한 감정이 차오릅니다. ‘아, 우리 가족은 행복했구나.’ 이것은 사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달콤한 위안이자,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그의 마지막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을 읽는 두 가지 방식을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는 ‘스투디움(Studium)’, 즉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일반적인 정보와 문화적 코드입니다. ‘1990년대의 한 가족이 바닷가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평범하고 안전한 감상이지요. 우리는 대부분의 사진을 이 스투디움의 차원에서 소비하며 편안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내 사진 속의 아주 사소한 디테일 하나가 예리한 바늘처럼 내 마음을 찌르고 들어옵니다. 그것이 바로 ‘풍크툼(Punctum)’입니다. 바르트는 이를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엄마의 입과 달리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빛, 아빠의 어색하게 쥔 주먹, 내 무릎에 선명한 상처 딱지, 혹은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간신히 걸린 누군가의 쓸쓸한 그림자.
이 예측 불가능한 풍크툼을 발견하는 순간, 사진이라는 ‘박제된 행복’의 신화에는 깊은 균열이 생깁니다. 그 사진을 찍기 직전,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다 혼이 났던 기억, 다음 날 떠안아야 할 생활비 걱정에 잠 못 이루던 부모님의 한숨, 형제와의 다툼 같은, 사진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났던 수많은 ‘진실’들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사진은 그날의 진실 전체가 아니라, ‘행복해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 속에서 연출된 1/125초의 진실일 뿐입니다.
사진 속 고정된 웃음 뒤편에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인 ‘애증’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아이러니한 관계. 사진 속에서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의 방을 침범하지 말라며 으르렁대던 형제. 딸의 장래를 누구보다 걱정하면서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며 상처를 주던 아버지의 서툰 사랑. 부모와 자식 사이의 세대 갈등, 형제간의 경쟁과 질투, 말없이 쌓여가는 서운함. 이 모든 역동적인 감정의 파도는 ‘김치’하는 한마디에 잠시 유예되고, 평화로운 미소의 가면 아래 봉인됩니다. 그러므로 오래된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은, 봉인된 시간의 지층을 파헤쳐 그 안에 숨겨진 복잡한 감정의 화석들을 발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사랑의 힘을 재확인하는 고고학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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