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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감각을 말할 때 범하는 오류

우리가 지금 같은 색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by 조하나


바닷속 세상에선 뭍에서 살던 인간의 모든 감각이 변한다.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물속 세상에선 모든 게 더 크고 가깝게 보이고, 음파의 이동 속도가 더 빨라 정확히 어떤 소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아채기 힘들다. 더 이상 코로 숨을 쉴 수 없게 된 인간의 ‘냄새’, 후각은 개념조차 무색해지며 소리를 내기 위해 공기가 필요한 인간은 물속 세상에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오직 수신호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바닷속에서 선천적으로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친구에게 다이빙 가이드를 한 적이 있는데 그날 이후 나는 진정한 ‘감각’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태양이 도달률이 낮아지면서 인간이 색깔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가시광선이 줄어들어 수면 위에서 빨간색이었던 것을 더 이상 빨간색이라 말할 수 없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지 위에서 전방과 좌우 방향만 살피며 다니면 되었던 인간에게 물속 세상에선 온몸을 둘러싼 모든 방향이 열린다. 어떤 이는 새롭게 열린 차원에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혼란스러워 물속에서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양팔 너비의 거리에 있는 버디를 잡겠다고 팔꿈치 너비만큼만 손을 뻗고는 물속에서 하염없이 춤추듯 헛손질을 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물속에서의 시간은 인간의 모든 감각을 바꿔 뭍에서보다 훨씬 빨리 간다.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 위로 올라온 사람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것 같냐고 물으면, 대부분 10분 정도라 답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1시간 물속에 있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실제 수중에 머문 시간을 기록하는 다이브 컴퓨터를 보여주면 그제야 자신의 감각의 오류를 받아들인다.


스쿠버 다이빙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이렇게 브리핑을 마무리한다.


원래 인간은 육지에서 태어나고 자라도록 디자인되어 있어요. 우리에겐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아가미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굳이 스쿠버 장비를 개발해 바닷속에 들어가려고 하죠. 자연을 거스르는 일, 그걸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 물속에 들어가면 두렵고 허둥댈 겁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예요. 연습하고 훈련하다 보면 점점 우리 몸도 물속 세상에 적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물속에 있는 것 자체가 자연을 거스르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다이버는 절대 자신감에 넘쳐서도,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교만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바닷속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이빙해야 합니다.




다운로드_(4).jpg 우리는 바닷속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이빙해야 합니다 ⓒ 조하나



늦깎이로 기자 일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다. 인간의 감각, 그중에서도 시각을 인위적으로 차단해 깊은 어둠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 <어둠 속의 대화> 취재를 통해 나는 평생 의심해 본 적 없는 ‘보다’라는 두 글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다시 볼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잠시 체험하는 절대적 어둠 속에서 기존에 시각을 가지고 살아오면서 익히고 학습했던 정보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세상에서 내가 당연히 여겨온 감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어리석게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들을 내 세계에 채우며 살아가기로 했다.


온 감각이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색깔로 넘쳐나는 자연마저도 개개인이 겪는 일인칭 경험이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을 감지할 수 있을 뿐 자외선과 적외선은 감지할 수 없다. 과연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의 색깔이 우리가 인지하는 색깔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로 색깔은 우리가 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을 구축하는 눈과 뇌에 의해 규정된다. 인간의 뇌는 종종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과연 모든 인간의 지각이 객관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개인의 경험이나 기대, 감정 상태 등 심리적 요인에 따라 같은 사물을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다. 나에게 빨간색으로 보이는 사물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색으로 보일까? 우리가 지금 같은 색깔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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