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백예린 <Flash and Core>

발라드부터 드럼앤베이스까지, 경계를 허무는 가장 대담하고 관능적인 진화.

by 조하나


백예린이 5년 만의 정규 앨범 <Flash and Core>로 돌아왔다. 이 앨범은, 그녀가 이전에 구축했던 '음색 여신'이나 '감성 팝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깨부수는 가장 용감하고도 성공적인 예술적 도약이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평단으로부터 "친숙한 목소리로 가장 낯선 세계를 그려낸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장르의 경계를 초월하려는 아티스트의 의지를 명확히 증명했다.



NISI20251004_0001961399_web.jpg




앨범은 프로듀서 PEEJAY와의 전폭적인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으며, "발라드부터 드럼 앤 베이스까지"라는 앨범 소개 문구처럼 극단적인 장르들을 자유롭게 오간다. 이는 백예린이 밴드 더 발룬티어스(The Volunteers) 활동을 통해 흡수한 록 사운드와, 전작 <tellusboutyourself>에서 시도했던 하우스, 브레이크비트의 영향이 완벽하게 체화된 결과이다.


타이틀곡 'MIRROR'는 이러한 진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재지한 코드 진행 위로 흐르는 몽환적인 보컬은 익숙한 백예린의 색채를 띠지만, 곡을 이끄는 것은 예상을 벗어나는 브레이크비트와 현란한 드럼 앤 베이스의 리듬이다.





특히 뮤직비디오 속 배우 권해효가 보여주는 그 느릿하면서도 감정이 묻어나는 '막춤' 장면은 팻보이 슬림(Fatboy Slim)의 'Weapon of Choice'에서 크리스토퍼 월켄이 보여준 ‘춤의 서사’와 맞닿아 있다. 둘 다 그저 '춤을 춘다'가 아닌, '춤으로 존재를 말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대담한 시도는 앨범 전체로 이어진다. 'No man's land'는 90년대 트립합의 어둡고 퇴폐적인 무드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며, 'Lovers of Artists'에서는 St. Vincent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냉소적인 보컬로 명성과 예술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다.


다채로운 사운드의 향연 속에서도 앨범의 중심을 잡는 것은 단연 백예린의 가사다. 그녀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강력하고 본능적인 작법을 선보인다. 실연의 아픔('save me')부터 새로운 사랑의 기쁨('Another season with you')은 물론, 인종차별과 유산에 대한 복잡한 심경('No man's land'), 심지어 쇼비즈니스 세계의 공허함('Television star')까지, 그 어떤 주제도 특유의 관능적이고 우아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물론 일부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백예린은 대중적 성공에 안주하는 대신, 가장 과감한 사운드를 선택하며 아티스트로서의 새로운 챕터를 선언했다. <Flash and Core>는 그녀의 음악적 정체성이 얼마나 넓고 깊어졌는지를 증명하는, 2025년 주목해야 할 걸작이다.






01_메일주소태그.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