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의 'MIRROR' 뮤직비디오 속 배우 권해효의 춤.
배우 크리스토퍼 월켄(Christopher Walken)이 호텔을 누비며 춤추는 모습을 담은 팻보이 슬림(Fatboy Slim)의 'Weapon Of Choice' 뮤직비디오는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춤과 중력의 시(詩)'라 불리며 최고의 작품으로 회자된다. 2001년,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가 감독한 이 뮤직비디오는 당시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올해의 비디오’를 포함한 6개 부문을 휩쓸었고, 2002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단편 뮤직비디오' 부문을 수상했다.
뮤직비디오에서 배우 월켄은 텅 빈 호텔 로비를 무대 삼아 중력을 거스르듯 날아올랐다. 그의 춤은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세상으로부터의 '비행(flight)'이자 탈출의 몸짓이었다. 규율과 관성으로 가득 찬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던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21세기 초입의 불안과 열망이 뒤섞인 시대정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2025년, 백예린의 'MIRROR' 뮤직비디오 속 배우 권해효 역시 홀로 춤을 춘다. 그러나 그의 공간은 광활한 로비가 아닌, 거울과 빛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내밀하고 고독한 방이다. 그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대신 흔들리고, 휘청이며 때로는 무너져 내린다. 월켄의 춤이 세계를 향한 '비행(Flight)'이었다면, 권해효의 춤은 자기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반사(Reflection)'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두 사람 모두 전문 댄서가 아닌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몸짓은 정교하게 계산된 기술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서사에 더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백예린의 'MIRROR'는 'Weapon of Choice'가 남긴 유산을 사려 깊게 참조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감각과 질문을 던진다.
'Weapon of Choice'의 호텔 로비는 익명의 공간이자 자본주의적 질서가 지배하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월켄은 이 질서 정연한 공간의 물리 법칙을 거부하며 허공을 가로지른다. 그의 춤은 외부 세계, 즉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을 향한 열망을 극적으로 시각화한다.
반면 'MIRROR'의 공간은 외부가 아닌 내부, 즉 자아를 비추는 거울의 방이다. 권해효는 이 공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춤춘다. 그의 시선은 세상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며, 그의 몸짓은 외부의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는 내면의 혼란과 고독, 슬픔과의 대면처럼 보인다. 이는 자유의 방향이 외부 세계에서 내면의 심리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이다. 21세기 초 우리가 세상 밖으로의 탈출을 꿈꿨다면, 2025년의 우리는 자기 안의 복잡한 미로를 탐험하며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Weapon of Choice'는 스파이크 존즈 특유의 '쿨'한 아이러니와 위트로 가득하다. 중년의 남성이 진지한 얼굴로 호텔에서 비현실적인 춤을 춘다는 설정 자체가 주는 페이소스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무심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로 거리를 두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MIRROR'의 시대는 다르다. 세상은 더욱 복잡해졌고 개인은 더 파편화되었으며, 감정을 숨기기보다 솔직하게 드러내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MIRROR'에는 냉소 대신 진심과 여백이 가득하다. 권해효의 서툴지만 진솔한 몸짓은 기술적 완벽함보다 감정의 진정성을 우선시하는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의 춤은 꾸밈없는 감정의 떨림 그 자체이며, 바로 그 떨림이야말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갈망하는 '진실'의 한 단면이다.
'Weapon of Choice'의 펑키하고 반복적인 베이스라인과 브레이크비트는 명확한 리듬 구조를 제시하며 몸을 움직이게 한다. 월켄의 몸은 그 비트를 정교하게, 때로는 예측 불가능하게 시각적으로 번역해 낸다. 그의 춤은 음악의 구조적 통제 안에서 즉흥적인 자유를 탐색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반면 백예린의 'MIRROR'는 명확한 비트나 리듬보다는 감정의 파동, 즉 '울림'으로 공간을 채운다. 그녀의 섬세한 목소리는 때로는 숨결처럼, 때로는 흐느낌처럼 퍼져나가고, 권해효의 몸은 그 미세한 음악적 결에 온전히 반응한다. 그는 박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의 몸짓은 음악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감정이 되고 감정이 몸짓이 되는, 소리와 몸의 깊은 공명을 체화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결국 두 춤은 서로 다른 시대를, 다른 방식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크리스토퍼 월켄의 춤이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꿈꾸었던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면, 권해효의 춤은 외부의 압력보다 내면의 불안과 대면하며 자기 자신과 화해하려는 몸짓, 즉 '자기 자신으로의 회귀'에 가깝다. 하나가 도망치는 자유였다면, 다른 하나는 머무는 용기인 셈이다.
'Weapon of Choice'가 우리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였다면, 'MIRROR'는 소리가 감정이 되고, 감정이 몸짓이 되는 아름다운 공명의 순간을 포착하며 우리를 다시 거울 앞에 세운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어떤 모습으로 춤추고 있는가?"
백예린의 대답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치거나 숨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당신만의 춤을 추세요." 이것이 2025년, 우리가 찾은 자유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