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죄의식과 여성성, 그 장작더미 위에서 피어나는 바로크 팝.
데뷔 앨범 <Prelude to Ecstasy>로 브릿 어워드 '라이징 스타'를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더 라스트 디너 파티(The Last Dinner Party)가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앨범 <From the Pyre>로 돌아왔다.
2025년 10월 17일 발매된 이 앨범은 전작의 성공 신화 위에 세워진 거대한 기대와 동시에, 그들의 이례적으로 빠른 성공과 일부 멤버들의 유복한 배경(사립학교 출신 등)으로 인해 불거진 '업계가 밀어주는 신인' 혹은 '금수저' 논란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밴드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빨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이었다고 일축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앨범은 제목 <From the Pyre>(장작더미로부터)가 암시하듯, 종교적 이미지, 특히 가톨릭적 죄의식과 여성성이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파고든다. 이는 리드 보컬 아비게일 모리스(Abigail Morris)가 종교적 트라우마를 겪는 '맏딸'의 페르소나를 통해 잘못된 관계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오프닝 트랙 'Agnus Dei'는 닿을 수 없는 연인을 신성시하며 병적인 갈망을 드러내고('One kiss and I / was disemboweled' - 한 번의 키스에 내장이 뒤틀렸네), 'Count The Ways'에서는 결혼이라는 성스러운 의식에 이르지 못한 관계에 대한 질투와 선망을 노래한다. 특히 이 곡의 기타 리프는 악틱 몽키스의 'R U Mine?'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운드적으로 앨범은 전작의 연장선에 있다. 화려하고 극적인 바로크 팝과 70년대 글램 록, 케이트 부시(Kate Bush)를 연상시키는 아트 록의 요소들이 더욱 과감하게 뒤섞인다. 'Second Best'는 그 대표적인 예로, 퀸(Queen)을 연상시키는 장엄한 코러스로 시작해 혼돈의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리드 싱글 'This Is the Killer Speaking'은 컨트리 풍의 기타 리프 위에서 관계의 파탄을 '살인'에 비유하는 도발적인 서사를 펼쳐내며 밴드의 장기인 극적인 스토리텔링 능력을 과시한다.
앨범 중반부터는 여성으로서 겪는 감정적 부담과 연대에 대한 주제가 부각된다. 'Woman Is a Tree'는 마치 마녀의 주문처럼 시작하는 아카펠라를 통해 여성 간의 원초적인 연결성을 노래하고, 리지 메일랜드(Lizzie Mayland)가 리드 보컬을 맡은 'Rifle'은 오르간 사운드를 중심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사냥에 비유하며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오로라 니셰브치(Aurora Nishevci)가 주도하는 'I Hold Your Anger'는 타인의 감정까지 떠안아야 하는 여성, 특히 '맏딸'의 역할을 탁월하게 묘사하며 많은 여성 리스너의 공감을 얻었다.
평단의 반응은 엇갈린다. <DIY> 매거진은 "전작보다 더욱 풍성하고 대담해졌다"고 호평했지만, <가디언>지는 "과도한 맥시멀리즘과 멜로드라마가 때로는 멜로디 자체의 즐거움을 해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From the Pyre>가 데뷔 앨범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예술적 야심을 더욱 밀어붙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더 라스트 디너 파티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들이 단순히 반짝이는 신성이 아님을, 그리고 논란마저 예술적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특권이 재능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듯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확실한 실력으로 입증해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