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노엘 갤러거의 예언

그가 옳았다, 예술은 이제 '순간'을 판다.

by 조하나


벌써 10년이다. 2015년 안산의 여름 공기는 유난히 축축하고 뜨겁고 바닥은 질퍽였지만, 함성으로 가득했다. 당시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한국을 찾은 노엘 갤러거. 그와의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된 나는 오아시스라는 한 시대를 만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했고, 그는 예상대로 거침없었다.




영화계에 넷플릭스가 있다면, 음악계엔 스포티파이가 등장해 뮤지션들의 음원 가치 후려치기에 대한 담론이 터져 나오기 시작할 때였다. 노엘 갤러거는 디지털 음원 서비스로 인해 더 이상 사람들이 앨범을 사지 않는 세태, 그로 인해 음악 그 자체의 가치를 잃은 현실에 대한 생각을 들려줬다. 단순한 불평이나 냉소가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읽는 자의 날카로운 직관, 혹은 예언에 가까웠다.


스트리밍과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한 시대, 음악 자체로는 더 이상 돈을 벌기 어렵다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음원의 가치는 점점 더 떨어지고 있고, 공연 티켓은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 아티스트들이 공연으로라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무료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왔다고 좋아하겠지? 앞으로 공연을 보려면 1백 불, 2백 불, 아니 5백 불은 지불해야 할걸... 내 생각엔 10곡이 담긴 앨범은 20불, 공연은 40불 정도가 되어야 균형이 맞는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처럼 음원의 가치와 공연 티켓 가격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록 스타가 아니다. 그냥 회사원일 뿐이지. 록 스타라 불리면서 은행원보다 돈을 못 버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러려고 내가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니다."


그의 말은 뼈아팠다. 복제 가능한 '상품'으로서의 음악은 힘을 잃고, 오직 복제 불가능한 '경험'으로서의 공연만이 살아남으리라는 예언. 그리고 2024년, 그의 말은 섬뜩하리만치 정확하게 현실이 되었다. 재결합을 선언한 오아시스 월드투어 티켓 가격은 그가 10년 전 예상했던 금액의 수십 배를 웃돈다. 천정부지로 솟구친 공연 티켓 가격 앞에서 우리는 이제 음악을 '듣는' 행위보다 '경험하는' 행위에 기꺼이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목격한다.


이것은 비단 음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OTT 속 무수한 콘텐츠의 바다에서 관객을 극장이라는 '공간'으로 불러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미술관은 '인증샷'을 넘어서는 몰입형 전시로 '체험'을 강조한다. 내가 몸담았던 잡지계 역시 종이책의 물성을 넘어, 독자와의 만남, 강연 등 '연결'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예술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가치가 발현되고 우리가 기꺼이 지갑을 여는 지점이 이동했을 뿐이다.


노엘이 던진 '록 스타'와 '회사원'의 비유는 여전히 내 마음을 맴돈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작품 판매 수익으로 다음 창작을 위한 시간과 사유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작품 자체가 다음 '노동'을 위한 홍보물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예술가는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경험'을 팔아야 하는 상황. 예술이 영감의 산물이 아닌, 끝없는 '용역' 제공이 되어갈 때, 깊은 성찰과 새로운 시도를 위한 '여백'은 사라져 간다.


하지만 이 변화를 절망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예술적 결과물(음악, 영화) 그 자체는 이제 '공기'나 '물'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며, 사람들을 특정한 경험으로 이끄는 '강력한 자석'이자 '입장권'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그 '입장권' 자체를 팔았다면, 이제는 '입장권'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그 안에서 더 깊고 특별한 '프리미엄 경험'을 제공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수익화 지점의 이동, 그 속에는 분명 새로운 기회가 숨 쉬고 있다.


결국 앞으로 예술 산업계는 '얼마나 많이 파느냐(Volume)'가 아니라 '얼마나 깊게 연결되느냐(Depth)'의 싸움이 될 것이다. AI가 그럴듯한 콘텐츠를 무한 생성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오히려 작품 이면의 '맥락(Context)'과 '이야기'에 목말라할 것이다. 내가 인터뷰를 통해 뮤지션의 삶과 철학을 파고들었던 것처럼, 작품을 둘러싼 깊이 있는 해석과 스토리를 전달하는 역할이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을 넘어, 그 노래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어 할 것이다.


또한, '좋아요' 수백만 개보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소수의 '찐팬'들과의 유대가 중요해진다. 노엘이 말한 '회사원' 신세를 면하게 해 줄 대안은 아티스트와 팬, 혹은 팬과 팬 사이의 '소속감'과 '연결'을 세심하게 만들어가는 데 있다. 아티스트의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교감하는 공간은 새로운 형태의 지지와 연대의 장이 될 수 있다.


경험의 형태 또한 진화할 것이다. 음악은 공연으로만, 영화는 상영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복합적인 '문화적 만남'은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순간'을 선사하며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이 디지털화될수록 우리는 '물성(Physicality)', 즉 손에 잡히는 것을 갈망한다. 아티스트의 철학을 정교하게 담아낸 물리적인 결과물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공기와 아티스트의 숨결을 담은 '오브제'로서 소유욕을 자극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험을 잇는 매력적인 다리가 될 수 있다.


AI의 등장은 어쩌면 이러한 변화를 더욱 부추길지 모른다. AI는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고뇌와 서사, 즉 '진정성(Authenticity)'을 부여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잘 만들어진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창작자의 삶의 태도, 철학, 상처와 극복의 이야기에 더 깊이 공감하고 그 가치를 소비할 것이다.


결국, 노엘 갤러거의 10년 전 예언은 예술 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대확장'의 신호탄이었다. 과거에는 '앨범'과 '티켓'이라는 한정된 상품만을 팔 수 있었다면, 이제는 아티스트의 '세계관 전체'를 맥락, 커뮤니티, 경험, 물성이라는 다양한 그릇에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무한 복제의 시대,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더 빠르고 화려한 콘텐츠가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깊이와 진정성을 담은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인간적인 연결이다. 노엘 갤러거가 지키고 싶었던 '록 스타'의 자존심은 이제 앨범 판매량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자기 세계의 깊이로 다시 쓰여야 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우리 시대 예술의 가치는 바로 그 깊은 바다에서,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며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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