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것을 잘 배웅하고, 오는 것을 잘 마중 나가는 삶의 고귀함.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잔인하게 끓어오르던 숲속의 여름은 처서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물러가고 있다.
뜨거운 청춘이 그렇듯 한여름 안에 있을 땐 잘 모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열기로 아득하면서도 언제 갑자기 소유권을 주장하며 나타날지 모를 다음 계절에 불안해 떤다. 그러다 지치기도 하고, 울분에 가득 차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하지만, 결국 여름은 언제나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끝나 버린다.
정확히 처소 바로 다음 날, 여름 내내 밤새 돌던 선풍기를 껐다. 아직도 미련이 뚝뚝 흐르는 여름의 뜨겁고 습기 어린 바람 사이사이, 미세하게 온도를 달리하는 바람이 섞여 불어오는 걸 눈치챘다. 여름 내내 쨍쨍한 햇빛에 숲의 색깔은 선명한 초록빛에 노란 물감을 살짝 탄 듯 채도가 낮아졌고, 달은 더 낮게, 그리고 붉게 뜨며, 초저녁부터 우는 풀벌레의 소리가 바뀌었다. 벼들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며 떨어뜨리기 시작하고, 화려했던 여름꽃들은 노화하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 버티고 버티다 끝내 열매를 맺으며 시들어 떨어진다. 하늘은 더 파래지고, 높아지고, 공격적이며 불평불만 가득했던 햇빛은 가볍고 보송보송하게 기분이 바뀌었다. 여름과 가을이 섞여 부는 바람은 냄새와 밀도, 세기, 방향 모두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한여름의 죄악을 씻겨낼 가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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