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안을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시 눈을 감는 것이다. 그러고는 바닷속에서 살 때 배운 호흡법을 잊지 않기 위해 천천히 나에게 허락된 공기를 조금씩 감사히 들이마셨다가 또 천천히 조금씩 내쉰다. 들숨과 날숨을 부드럽게 이어가다 보면 내 몸은 어느새 들어왔다 나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고요한 파도가 되고 내 마음은 깊고 넓은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된다.
194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라고 선언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에 공표된 건강의 정의에 의학과 기술이 훨씬 발전한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 어느 의미에서도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이 서글펐던 때가 있었다. 도시에선 나뿐 아닌 모든 사람이 진단받지 않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아니, 누군가를 진단할 자격을 갖췄다는 정신과 의사조차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어쩌지 못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아침이 반복되었고, 눈을 뜬다는 사실이 저주처럼 느껴져 천근 같은 눈꺼풀을 들지 못하고 만근 같은 이불속을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두려울 때가 있었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고 나를 덮칠 수 있고 지금도 그때를 호시탐탐 노릴 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나는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안다.
이따금 예고도 없이 살아있다는 두려움과 출처 없는 불안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올 때면 무조건 바닷속으로 뛰어들던 고래는 이제 숲속 산책을 나선다. 운 좋게도 내가 사는 외딴 시골 마을엔 소박한 둘레길이 나 있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덕에 온 숲이 내 것이다. 똑바로 숲을 걸으며 지나치는 나뭇잎의 미세한 흔들림과 푸릇한 내음과 따뜻한 햇살과 서늘한 그늘을 가슴에 새긴다. 그 와중에도 내 양쪽 어깨에 앉아 조용히 할 기미가 안 보이는 불안과 걱정, 두려움의 감정들이 끊임없이 속삭인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불안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하는 감정’이라고 했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불안을 영원불멸시킬 수 없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안과 두려움은 무언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겨났다. 지금 가진 무언가를 잃게 될까, 혹은 지금 가지지 못한 걸 시간이 지나서도 못 가지게 될까, 더 나아가서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단어 자체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불안은 때론 내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고, 나를 더 깊은 진실로 이끈다. 차라리 불안은 영원히 배신하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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