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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이 성추행에 대처하는 방법

문제의 본질은 ‘치안’과 ‘경호’가 아니다

by 조하나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한낮 공개 석상에서 한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 소식을 다루는 국내 언론사나 댓글의 반응은 엉뚱한 곳을 향했다.


“멕시코 치안이 나빠서 그렇다”, “경호가 문제였다”, 심지어 “저 나라 수준이 원래 저렇다”는 식의 조롱 섞인 지적들이었다. 사건의 본질은 ‘성범죄’가 아닌 ‘치안’과 ‘경호 실패’의 문제로 치환되었고, 피해는 멕시코라는 나라의 ‘수준’ 탓으로 돌려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대통령이 되어도 성추행을 당하는구나” 하며 한숨을 지었다.


이 빗나간 논리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얼마 전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고백한 한 여성 유튜버에게 쏟아진 2차 가해가 그렇다. “한국이 치안이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데?”, “너 인도 가봤냐? 거기에 비하면 한국은 천국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그동안 그렇게 웃고 운동하고 놀러 다녔냐?”라며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댓글까지. 치안의 좋고 나쁨을 따지거나 피해자의 일상을 검열하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은 성범죄의 본질을 흐리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전형적인 논리다.


하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인 셰인바움 대통령의 대처는 이러한 빗나간 시선들에 결정타를 날렸다. 그녀는 “경호가 문제였다”는 지적에 대해, 이번 일로 경호를 강화하거나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대신 “모든 멕시코 여성을 대신할 책임감”을 느낀다며 가해자를 공식 고소했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히 ‘본질’을 향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멕시코 전국적인 범죄로 규정하고, 여성들이 피해 사실을 더 쉽게 신고하도록 법과 절차를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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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녀가 경호를 강화했다면, 이는 ‘여성이 자기 방어를 못 한 문제’라는 잘못된 관념을 강화하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셈이 됐을 것이다. 그녀는 이 함정을 피하고, 이것이 치안 문제가 아닌 명백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범죄’임을, 그리고 경호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을 향한 연대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사회를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 나라의 모든 여성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멕시코의 악명 높은 치안”이라는 단정 역시 서구 미디어가 만든 <나르코스>의 이미지에 기댄 한국인의 편견일 수 있다. 멕시코에서 살아본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멕시코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고 주마다 법이 다르다. 섣부른 일반화는 위험하다. 만약 외국인이 한국의 단면만 보고 “한국은 이렇다”고 잘못 단정하는 것을 우리 역시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그럴 만한 나라’의 여성은 그런 짓을 당해도 되는가?


본질은 아주 단순하다. ‘여성’ 인간이 ‘남성’ 인간에게 성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왜 자꾸 눈을 딴 데로 돌리는가.


우리가 윤 정권 아래 고생하던 작년 10월, 멕시코 국민은 이런 대통령을 선택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70~80%를 웃도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G7 정상회의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그 비결을 물었을 정도다.


그 지지율은 공허하지 않다. 그녀는 취임 1년여 만에 국민이 직접 판사와 대법원장을 선출하는 핵심 사법 개혁을 관철시켰다. 또한 여성 노령 연금을 도입하고 학생 장학금을 확대하는 등 전임 정부의 사회 보장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며 구체적인 성과로 리더십을 증명하고 있다. 멕시코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필요 없이 충분히 멋진 나라다.


멕시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대낮 길거리에서 성추행을 당한 사건에 대해 ‘경호 문제’라며 핀트를 빗겨나가고 ‘치안 수준’을 운운하며 오만한 조롱을 보내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그렇게 치안이 좋다는 한국의 성범죄율은 어떤가. 무엇보다 사후 대처가 중요한, 이미 일어난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본질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은가.


셰인바움 대통령이 여성 최초 대통령으로서 이토록 멋지게 일을 해내고 있는 것과 그녀가 성폭력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자랄 멕시코의 소녀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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