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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도 특권이다

김예지 국회의원을 향한 박민영 대변인의 혐오 발언에 대하여.

by 조하나



2025년 11월,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 정치 한복판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터져 나왔다. 시정잡배의 입에서도 나오기 힘든 저열한 혐오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수 정당 ‘대변인’이라는 공식적인 입을 통해 쏟아진 것이다.


그 말의 칼끝은 지금껏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 온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김예지를 향해 있었다. 이 사건은 ‘막말 파동’이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차별’에 무감각한 야만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왜 ‘OECD 유일의 차별금지법 미제정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비극적이고 처참한 증거다.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


박민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이 유튜브 방송에서 뱉어낸 말들은 ‘비판’이 아닌 ‘폭력’이었다. 그는 김예지 의원을 향해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해서 문제”라며 그의 존재 자체를 ‘과도한 혜택’으로 치부했다.


더 나아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이라며 장애가 주는 사회적 장벽을 조롱했고, 심지어 “한동훈 위원장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라는 치욕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옆자리의 극우 유튜버 진행자(감동란)가 “장애 없는 남자였으면 맞아 죽었을 것”이라며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을 때, 박 대변인은 이를 말리기는커녕 소리 내어 웃으며 동조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상실한 장면이었다.










과연 누가 진짜 ‘장애’를 가졌는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수’ 정당이라는 국민의힘 대변인 박민영은 방송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쏟아냈다. 그의 발언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속에 담긴 인식의 천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장애인 할당이 너무 많다” “눈 불편한 거 빼면 기득권”


명백한 허위이자 선동이다. 국회 전체 의원 300명 중 장애인 의원은 단 3명, 고작 1%에 불과하다. 99%의 비장애인이 점령한 국회에서 겨우 1%의 목소리를 낸 것을 두고 ‘특혜’라며 공격하는 것은, 강자가 약자의 밥그릇마저 뺏으려는 추악한 탐욕일 뿐이다.


대한민국에는 약 264만 명의 등록 장애인이 살고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많은 사람이 장애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나와는 무관한 '운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88.1%는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다. 10명 중 9명은 태어날 때는 비장애인이었지만,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계기로 장애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반면, 선천적인 원인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경우는 5% 남짓에 불과하다. 이는 장애가 특별한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삶의 경로임을 보여준다.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다” “여성·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무기로 쓴다”


박민영 대변인은 여성과 장애인이 겪는 이중의 구조적 차별을 철저히 무시한다. 이는 그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무기’라고 매도하며 차별의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전형적인 2차 가해다.



진행자의 “장애 없는 남자였으면 맞아 죽었다” “XX(여성 비하 욕설)” “외국인 노동자들은 바퀴벌레”발언에 웃으며 호응


이것은 비판의 영역을 넘어선 범죄적 혐오다. 동료 시민이자 의원을 향해 신체적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과 인격을 말살하는 욕설에 대변인이라는 자가 낄낄대며 동조했다. 반박할 힘조차 없는 소수자를 조롱하며 희열을 느끼는 야만적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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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끔찍한 혐오 발언이 문제가 되자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박 대변인의 사표를 도리어 반려했고, 일부 지지자들은 “잘했다”며 화환을 보내 그를 응원했다.


‘신체적 장애가 없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소수자를 마음껏 혐오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으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박민영.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진정 치유받아야 할 ‘마음의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범자들: 침묵하거나, 혹은 방조하거나


더욱 절망적인 것은 그가 속한 정당, 국민의힘의 태도이다. 명백한 인권 침해와 차별 발언 앞에서도 당 지도부는 침묵했다. 여론이 들끓자 내놓은 조치는 고작 ‘구두 경고’. 징계도, 직위 해제도 없는 하나 마나 한 경고였다. 왜, 그들은 이토록 명백한 혐오를 감싸고 도는가?


첫째, 김예지 의원은 친한동훈계로 이미 국민의힘 안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집단 괴롭힘을 당해왔다. 헌법 기관으로서 양심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내란 특검법 표결에 당론을 어기고 찬성표를 던진 그녀를, 당 주류는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박 대변인의 조롱은 일종의 ‘정치적 응징’이었기에 그들은 침묵으로 동조했다.


둘째, 국민의힘은 ‘이대남(2030 남성)’ 지지층의 이탈을 우려한다. ‘나는 국대다’ 우승자 출신인 박민영은 ‘이준석 키즈’로 이준석 전 대표 시절 유입된 젊은 남성 당원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인물로 통한다. 그를 내칠 경우 핵심 지지층이 반발할까 두려워 혐오조차 용인한 것이다.


셋째, ‘반(反) PC’ 정서에 편승하려는 의도다. 보수 일각의 “소수자 배려는 역차별”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퍼져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은 기득권”이라는 박 대변인의 궤변은 강성 지지층에게 “할 말을 했다”는 잘못된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다. 당은 이 나쁜 시그널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넷째, 박 대변인이 가진 ‘전투형 스피커’로서의 효용 가치 때문이다. 얼마 전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박민영을 당이 인증한 공식 패널이라 천명했다. 자극적인 이슈를 만들고 야당을 공격하는 데 능한 그를 당장 내치기보다는, 적당히 무마하여 계속 써먹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느라 동료 의원이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난도질당하는 것을 방관한 그들은, 사실상 이 야만의 공범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의힘의 급격한 극우 파시즘화다. 최근 장동혁 대표는 내란 선동 혐의를 받는 황교안 전 총리를 옹호하며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선언했고,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전광훈 목사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는 공당이 합리적 보수의 궤도를 이탈해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극단 세력과 손을 잡겠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숨기지조차 않는다. 부끄러움이 없다. 혐오와 차별을 동력으로 삼는 이들 세력과 ‘체제 전쟁’을 운운하며 연대하는 상황에서, 장애인 비하 발언쯤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 ‘내부의 언어’로 전락한 것이다.











‘비장애인’ 국회의원들을 압도한 ‘장애인’ 김예지의 실력


박민영의 말처럼 김예지 의원은 정말 ‘할당’ 덕분에, ‘장애’를 특혜로 내세우며 자리만 지키는 무능한 존재인가?


김예지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법안 가결률 당내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22대 국회 개원 1년 만에 무려 80여 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출석률은 더욱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21대 국회 당시, 국민의힘 소속 일부 중진 의원들은 20%가 넘는 무단결석률을 기록하며 불명예 명단에 올랐다. 반면, 김예지 의원은 안내견 조이와 함께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대한민국 헌정대상’을 수상하는 등 압도적인 성실함을 증명했다. 이동권의 제약을 가진 장애인 의원이, 사지 멀쩡한 비장애인 의원들보다 더 자주, 더 오래 국회 의석을 지킨 것이다.


그가 만든 ‘조이법’, ‘점자법’은 누군가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꿨다. 박민영 대변인이 옹호하려는 그 수많은 ‘신체 건장한’ 비장애인 국회의원들이 막말과 정쟁, 습관적인 결석으로 세비를 낭비할 때, 앞이 보이지 않는 김예지는 그들보다 몇 배 더 치열하게 연구하고, 입법하고, 투쟁했다.


진정한 ‘능력주의’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조롱받아야 할 대상은 김예지가 아니라, 신체적 우월함을 가지고도 그보다 못한 성과를 낸 게으른 의원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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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방치하면 결국 괴물이 된다”


한국이 혐오를 ‘정치적 표현’ 또는 ‘표현의 자유’라며 방관하는 사이, 선진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독일은 최근 극우 세력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해 ‘정당 해산’이라는 헌법상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또한, 온라인상에서 정치인이나 소수자에게 “죽이겠다”, “가스실에 보내겠다” 같은 혐오 댓글을 단 사람들을 끝까지 추적해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기소하는 등 실질적인 공권력을 행사한다.


지난 7월, 독일 내무부 장관은 혐오를 선동하고 유대인과 이주민을 비하해 온 극우 잡지 <콤팩트(COMPACT)>를 전격 폐간 조치했다. “인종차별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국가의 단호한 메시지였다.


반면,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박민영처럼 동료 의원을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개 조롱해도 정치적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전 국민을 상대로 ‘젓가락’ 발언을 한 이준석은 여전히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혐오를 조장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나치는 1933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회가 혐오에 침묵할 때 자라났다.”


독일은 나치의 뼈아픈 역사 때문에 ‘혐오를 방치하면 결국 괴물이 된다’는 사실을 헌법에 새겨 넣은 나라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라는 참혹한 야만의 시대를 겪고도, 여전히 혐오를 방치하여 우리 안의 괴물을 키우고 있다.







OECD 유일의 ‘무방비 지대’: 한국의 참담한 현실


지금 김예지 의원은 박 대변인을 고소했지만, 죄목은 기껏해야 ‘모욕죄’나 ‘명예훼손’이다. 현행법상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은 처벌이 어렵고, 인정된다 한들 고작 벌금 1~2백만 원에 그친다.


독일에서는 정당이 해산될 수 있는 위헌적 발언이, 한국에서는 정치인의 ‘유명세 치른 값’ 정도로 끝나는 것이다. 피해자는 피눈물을 흘리며 경찰서를 오가지만, 가해자는 “정치적 견해였다”며 뻔뻔하게 고개를 든다.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만약 우리에게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랐을까.


첫째, 박민영의 발언은 단순 모욕이 아닌 ‘괴롭힘’이라는 명백한 차별 행위로 규정된다. 법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모욕적 환경을 조성하여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기 때문이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해진다. 악의적인 차별 행위에 대해 피해액의 2배에서 5배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릴 수 있다. 벌금 몇 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혐오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금융 치료를 통해 깨닫게 할 수 있다.


셋째, 국가인권위원회가 강력한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강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3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반복적으로 부과하여 끝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품격은 법에서 시작된다


김예지 의원 사태는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울리고 있는 경종을 무시해 온 결과다. 혐오가 정치의 도구가 되고, 차별이 능력주의로 포장되는 야만의 시대에는 약자의 존엄을 지켜줄 단단한 방패가 필요하다.


독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정당 해산까지 불사한다. 그런데 우리는 ‘일 잘하는 국회의원’이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공개 조롱을 당해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다. 이 무기력함을 끝낼 유일한 길은 차별금지법 제정뿐이다. 누군가의 인격이 액세서리 취급을 받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당장 이 야만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은 당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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