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된 폭력|개봉 신작 <나의 이름은 마리아>
오는 11월 26일, 영화 역사상 가장 추악한 스캔들 중 하나로 기록된 사건의 진실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다시 그리는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가 국내 개봉합니다. 이 영화는 1972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출연했던 19세의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무명 신인이었던 마리아 슈나이더는 48세의 슈퍼스타 말론 브란도와 당대 최고의 거장 베르톨루치 감독의 작품에 주연으로 발탁되며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영화라는 세계에서 마주한 것은 꿈이 아닌, 평생의 멍에가 될 끔찍한 폭력이었습니다.
문제의 ‘버터 강간 씬’은 영화사에 ‘악명’으로 남았습니다. 이 장면은 대본에 없었으며, 촬영 당일 아침 베르톨루치와 브란도가 “여배우의 연기가 아닌, 10대 소녀의 실제 굴욕감을 담겠다”는 명목으로 ‘공모’한 것이었죠. 그들은 이 사실을 마리아 슈나이더에게만 알리지 않았고, 카메라는 그녀가 느낀 실제 공포와 모멸감을 그대로 영화에 기록됐습니다. 마리아 슈나이더는 생전 이 장면에 대해 “두 사람에게 강간당한 기분이었다”고 끔찍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이 폭력적인 ‘연출’은 이후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섹스 심벌’로 낙인찍힌 그녀는 트라우마 속에서 평생 약물 중독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으며,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습니다. 결국 2011년, 58세의 이른 나이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거장’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말론 브란도는 촬영 직후 그녀에게 “그냥 영화일 뿐이야”라고 말했으며, 베르톨루치 감독은 2013년 인터뷰에서 동의 없이 촬영했음을 시인하면서도 “죄책감은 들지만, 예술적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바로 이 모든 ‘예술’과 ‘거장’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진실을 고발합니다. 이 영화가 폭로를 넘어 깊은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마리아 슈나이더의 사촌 바네사 슈나이더가 쓴 회고록을 원작으로, 그녀의 가족이 직접 그녀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아주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연출을 맡은 제시카 팔뤼 감독이 과거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에서 조연출로 일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결코 ‘거장’을 옹호하는 내부자의 시선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남성 천재’ 중심의 영화 시스템 내부를 경험했던 사람이기에 그 시스템이 어떻게 한 여성을 대상화하고 짓밟았는지 더욱 날카롭게 비판하는 용기 있는 고백으로 읽힙니다.
그럼에도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고발과 분노만으로 가득 찬 한 여배우의 비극적인 전기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배우가 되고자 했던 한 10대 여성의 꿈과 열정, 그리고 파리의 낭만적인 일상을 서정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에게 깊은 위로와 일침, 그리고 열정의 양면에 대한 경고를 동시에 전합니다.
그리고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평생을 '예술가'로 추앙받으며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 베르톨루치 감독과 배우 말론 브란도가 아닌,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를 기억해 달라고.
<나의 이름은 마리아>는 11월 26일 국내 개봉합니다.